[Review] "2018 리컴포즈"를 기다리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017 리컴포즈" 리뷰
글 입력 2017.04.02 01: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다른 아이디어 없어?"
"새로운 것 좀 없니?"


 누군가의 질타에 '제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왔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나올만한 건 더 있지만 꺼내지 못할 뿐이니 말이다.



# 새로운 '경험치'가 필요하니까
 
 일상은 딱딱하다. 그 안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나아갈 길을 단단한 벽이 빈틈없이 가로막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게임들처럼, '+1'의 작은 경험치로 우린 '진화'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그 '+1'이 될만한,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부랴부랴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 최근 눈에 들어왔던 건 "2017 리컴포즈"였다. '전통의 자기혁명 프로젝트'란 문구가 '바로 여기서 그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생이 된 뒤 기회만 되면 연주회를 다녔다. 명성있는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나 첼리스트들의 내한공연, 돈이 안되면 안되는 대로 그들의 공연영상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고 보곤 했다. 그러니까, '국악관현악' 연주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 기억이라곤 학창시절 음악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취타'와 '대취타' 연주 영상 정도? 물론 종묘제례악처럼 유명한 악곡들의 연주장면을 TV에서 수십번은 봤을 거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7 리컴포즈"는 그래서 새로운 것이었다. 내가 열심히 다녔던 'orchestra'의 연주가 아닌,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였기 때문이다. 또한 '리컴포즈(recompose)'라는 이름처럼 4명의 작곡가들이 재창작한 곡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악을 기반으로 작곡계에 입문했다는 이들이 보여줄 새로운 해석이 나를 더욱 기대하게 했던 것이다.


KakaoTalk_20170328_201637212.jpg
달오름극장 계단을 오르기 전에

KakaoTalk_20170328_201637346.jpg
공연 시작 전 무대

KakaoTalk_20170328_201637450.jpg
나를 끌리게 했던 그 포스터



# "2017리컴포즈"

 첫 곡이 시작하자마자 오래 전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눈앞에서 봤던 그 순간, 일사불란한 연주자들의 활, 적당한 음을 짚는 손끝, 지휘자의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날 때의 그 충격이 다시 느껴졌던 것이다. 연주회를 간다 하면 대부분은 생(生) 음악을 듣는 것에 의의를 둔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생음악, 그 이상이 있다. 국악관현악단의 연주는 연주회가 단순히 '듣기 위한' 공간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관현악단의 맨 앞줄에는 가야금 연주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쾌활한 손끝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통이 조여져왔다. 마치 사람처럼 크게 누워있는 가야금을 껴안는 듯, 가파른 길을 내려가는 듯, 그들의 연주는 한편의 무용과 같았다. 해금은 바이올린을 덜고 덜어낸 것처럼 생겼지만 다양한 소리를 내며, 공연시간 내내 그 소리에 감탄했던 것 같다. 평소에 생각나는 전통악기라곤 가야금, 꽹과리, 장구 그 정도 뿐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악기는 다름 아닌 꽹과리와 태평소다. 모든 악기의 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라도 태평소와 꽹과리는 순식간에 소리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 강렬한 '이미지'가 -분명히 '들은 것'이었지만-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통 악기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연주자들의 기량에 4명의 작곡가들의 노력이 적절히 덧입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궁중음악인 ‘수제천’, 제주 민요 ‘진토굿’, 전통 성악곡 ‘이수대엽’, 범패의 짓소리까지 각기 다른 전통음악들이 새로운 변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통악기로 연주되었지만 마치 현대적인 서양음악 같은 곡도 있었으며 서양악기로 연주하더라도 한국적 리듬이 도드라질 법한 곡들도 있었다. ‘버들은 실이 되고...’는 첫번째 곡보다는 어딘가 익숙하고, 서정적인 느낌도 들었다. 마지막 곡에서는 전통적 리듬들이 다채롭게 변주되는 과정이 그 곡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만들었다.

 "2017 리컴포즈"에서 찾은 특별한 재미가 하나 있었는데, 특정 소리가 어떤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겐 전통악기들이 비교적 생소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기에 약간의 죄책감을 동반하는 재미였다. 연주가 모두 끝나니 각 연주자들 앞에 놓여 있는 악기들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한복을 입은 연주자가 홀로 여유롭게 현을 뜯는 모습만 상상해 온 나의 얕은 상상력 때문일까. "2017 리컴포즈"는 서양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겹쳐지면서도 전통악기와 우리 가락만의 아름다움이 넘쳤다. 분명 낯설지만 친숙한 느낌과 감성이었다.

 리뷰를 다 쓰고 나니, 애초에 이 글의 목적이 '전통음악 연주회 리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치 '+1'을 얻어낸 경험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2018 리컴포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2017리컴포즈_포스터_최종.jpg
 

[이서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