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창조해 나가는 소통의 예술 [문화 전반]

작품 앞에 한 발짝 다가서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기
글 입력 2017.03.30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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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여러 기능 중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는 바로 소통이다. 현대 사회는 힐링 열풍이 불기도 할 만큼 지치고 힘든 일상을 보내는 이들로 가득하다. 예술은 현대인에게 그 감상만으로도 따스한 위로를 건네기도, 친근한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감상자가 이러한 소통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아마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때로는 적극적인 참여 자체가 작품을 형성하는 중요한 재료나 결과물이 된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체험하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관객참여 예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생명을 쓰는 타자기.jpg
(크리스타 좀머러, 로랑 미뇽뇨 / 생명을 쓰는 타자기 / 2006)
 

  먼저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에서 착안한 인터랙티브 아트는 미디어아트가 관객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데, 로랑 미뇨노의 <생명을 쓰는 타자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작품은 감상자가 키보드를 통해 활자를 입력하면, 종이에 인공생명에 해당하는 벌레 모양의 이미지가 생성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프로그램은 성장과 경쟁의 생태계를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글자를 타이핑한 관객은 새 생명의 창조자가 된다. 여기에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당연히 절대로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역할은 감상자에게 붓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결국 하나의 작품을 그려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작업한 작가가 아닌, 그것을 감상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관람객이 된다.


팀랩월드.jpg
(팁랩월드의 크리스탈 유니버스)


  보다 대중적이고 쉽게 인터랙티브 아트에 다가가고 싶다면, 잠실 롯데월드의 <팀랩월드>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관객이 직접 구성해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을 창작하고, 관객의 손길에 따라 작품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남녀노소의 흥미를 끌기에 적합하게 구성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꽃이 예쁘게 필 때 즈음 석촌호수 꽃구경과 팁랩월드 방문을 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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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작업 중인 참가자)


  다음은 관객이 실제 작품의 일부가 되는 현상이다. 작년 이맘때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안규철 작가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展에 전시된 <1,000명의 책>은 천여 명의 관객이 전시기간동안 릴레이 형식으로 문학작품을 필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익명의 개인들은 하나의 책을 완성해 나가며 공동체 정신을 되새긴다. 자신만의 글씨체로 숨죽이며 빼곡이 원고지를 한 장 한 장 채워 나간다. 필사 참여자의 후기가 전하는 메시지도 재미있다.
 
“예술 작품에 나의 흔적을 남기게 되어 좋다”
“연대의 의미를 전달하는 일에 동참해서 뿌듯하다”
 
참여자의 흔적은 <1000명의 책>의 낱장을 이루는 재료가 되고, 글을 쓰는 개인의 모습은 또 다른 감상자의 관람 대상이 되어 연대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들은 관객이자, 작품의 구성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백현주 낭패.jpg
(거의 완성된 낭패 건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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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 일부분)


  마지막은 관객의 솜씨로 완성되어 나가는 예술이다. 며칠 전 막을 내린 백현주 작가의 ‘낭패’展에는 무너진 건축물 하나가 있다. 이는 전시의 개막과 동시에 인위적으로 부수어 놓은 것으로, 갤러리를 방문한 관객들은 협업을 통해 쓰러진 나무더미를 천천히 재건축해 나간다. 나 또한 2월 중순 이곳의 전시를 관람하면서 식은땀이 뻘뻘,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열심히 축조에 참여했으며 이후에는 사진으로 건축과정을 지켜보았다. 관객들이 주고받는 암묵적인 텔레파시가 있는 것인지, 완성품을 보니 울타리도 있고 제법 알록달록한 성의 형상을 이룬 것이 참 신기했다. 전시의 제목인 ‘낭패’는 중국 고사 속 뒷다리가 없는 ‘낭’과 앞다리가 없는 ‘패’라는 이리가 서로 기생하여 산다는 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관객은 건물이 무너진 낭패의 상황에서, 다른 관객과의 협업 하에 또 다른 의미의 낭패를 이룬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건축물의 생산자가 되어 공동체의 작업에 참여하며 행위의 의미를 곱씹는다.

 
  똑같은 작품 앞에서 상반된 평가가 오간다. 어떤 이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두고 “대중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섰으며, 상업주의에 도태된 사회를 일깨워 주었다.”고 하지만 다른 이는 “대중적이라는 탈을 썼지만 가장 향유적인 예술이다.”라 말한다. 이처럼 하나의 작업물 일지라도 감상자와의 소통에 의해 각기 다른 작품으로 완성된다. 소통의 과정에서 형성된 기운이나 감정은 순전히 관객 개인만의 것으로, 이 또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 우리는 작품 앞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헤집고 들어감으로써 혹은 함께 창조해 나감으로써 보다 넉넉한 소통의 예술을 맛볼 수 있다.


[신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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