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의 흐름을 잊다, '스타바트 마테르' [공연]

무한한 신을 닮기 위한 유한한 인간의 노력
글 입력 2017.03.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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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종교 음악, 예술의전당. 서울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 <스타바트 마테르>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는 저런 단어들에 지레 움츠러들었다. 그 분야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쓸데없는 편견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기 전에 ‘스타바트 마테르’와 드보르작, 서울오라토리오에 대해 얄팍한 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는 있었지만. 죽은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와 세 자녀를 잃고 눈물로 곡을 써내려 간 드보르작이 만나면 어떤 음악이 될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고 설렜다.



내가 공연을 보는 법



 공연장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대규모 공연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곧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합창단원들이 입장하고, 메인 성악가들과 지휘자가 입장했다. 1막의 첫 번째 곡이 울려 퍼지는데,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생생했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선율을 그대로 느끼다가, 악기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들었다. 최근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유행처럼 퍼진 ASMR을 아는가? 바람이 부는 소리,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 등을 통해 뇌를 안정시키는 음악이다. 항상 시끄러운 소리에 치이며 살다보니 그런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게 되는 것 같다. 스타바트 마테르도 마찬가지. 모두가 기침도 참아가며 숨죽이고 듣는데,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선율이 몸을 고요하게 안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첫 곡부터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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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토리움을 구성하는 모든 소리들에 귀 기울였다. 바이올린, 플룻과 같이 친숙한 악기도 보였고,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보기 힘든 더블베이스, 오보에, 그리고 팀파니도 들렸다. 이런 음악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인가, 나에게는 각각의 매력이 신선했고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악기들이 모여 있지만 어느 하나 두드러지게 튀는 것 없이 각자의 매력을 조화롭게 발산한다는 것이다. 이 많은 악기들의 소리를 하나하나 만들어낸 작곡가도, 다듬은 지휘자도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악기보다도 가장 강렬한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닐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감싸는 소리였다.



무한한 신을 닮기 위한 유한한 인간의 노력


공연을 보며 최근 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종교’라는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비종교인으로서 종교가 가진 힘과 역사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성적으로 배우고 있었는데, 감각을 통해 피부로 느낀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특히 청각을 통해 느낀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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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바트 마테르>는 지극히 종교적인 음악이다. 오라토리움 자체가 대부분 종교를 다룬 것이기도 하고, 스타바트 마테르는 ‘예수의 어머니가 십자가 밑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가사도 그런 내용이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어머니. 지구상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이 아닐까. 음악도 부드럽지만 어둡고, 어딘가 침울했다.

그러나 이 아들이 그냥 인간이 아닌 예수이고,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신성함’이 깃든다. 예수는 죽었지만 곧 다시 부활할 것이고, 이 죽음을 통해 인간은 커다란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1막과 2막의 마지막 곡은 장엄하고, 오히려 역동적이고 환희에 차 있다. 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이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니며, 성모 마리아의 슬픔이 부질없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가장 큰 비극에서 피어나는 종교적 희망, 그 역시 아이를 잃은 아버지였던 드보르작이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해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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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예술은 무한한 신을 닮기 위한 유한한 인간의 노력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논리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교하게 짜인 열 곡의 음악을 듣다보면 ‘영원’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지극히 종교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음악이 가진 힘은 비종교인도 무너지게 한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요즘의 예술은 개념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감상자가 작품 밖에서 바쁘게 생각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작품 속에 완전히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는 고전 예술을 참 오랜만에 접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멋진 공연을 선사해주신 서울오라토리오와 최영철 감독님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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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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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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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달곰
    • 현진씨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의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직접 보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한 듯한 느낌을 제공하는 리뷰가 좋은 리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현진씨의 글은 제게 좋은 리뷰입니다.저와 공통점이 많으신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저도 클래식이라고 하면 여전히 겁을 먹고 무교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의 매력을, 종교의 신성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나 공연들이 종종 있더라구요. 저같은 경우는 서울국제음악제의 피아노 독주회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랬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현진씨도 스타바트 마테르 공연에서 그런 걸 느끼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직접 공연을 보러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관련 영상을(아주 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것으로) 첨부해주시면 리뷰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찾아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하는 차원에서요!글 너무 잘 읽었고,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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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예
    • 종교라는 중심 키워드를 통해 음악적 감상을 기술하셨다는 부분이 인상깊어요. 저 또한 비종교인이지만 가끔 작품을 감상하며 종교의 힘이 이런것인가, 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일 때가 많아요. 자칫하면 나이브하거나 재미없게 기술될 수 있는 종교라는 단어를, 본인의 경험에 기반해 쉽게 공감되도록 풀어주신듯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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