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번째 이별을 보여 주는 책,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문학]

사랑과 두 번의 이별
글 입력 2017.03.2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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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은 지 2주가 넘어가던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소설 속 사쿠와 아키를 보내기가 아쉬워 책꽂이에 두지 않고 책상 위나 침대 머리맡에 놔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을 책과 함께 보내다 가까운 나라로 짧은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2시간 남짓의 비행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 까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 온 것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그렇게 책을 챙겨 공항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륙한 뒤 비행기가 구름 위로 떠올랐을 때, 창 밖의 눈부신 햇살과 함께 책을 다시금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어떻게 보면 진부합니다. 남녀가 사랑했지만 병에 걸린 여자가 죽는 그런 스토리. 하지만 세중사에게는 다른 점들이 있었습니다. 소설의 시작을 남자주인공인 사쿠가 죽은 아키를 그리워하며 시작한다는 점, 아키를 그리워하는 사쿠의 감정들이 잔잔하게 서술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쿠가 아키를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랑

  사쿠와 아키는 중학교 학급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그 둘의 사이를 모두가 아는 그런 가까운 사이가 되게 됩니다. 둘의 사랑 이야기는 크게 대단할 것이 없습니다. 여느 소설들처럼 달콤하고 잘 꾸며진 말들을 주고받는 장면도 없으며 로맨틱한 키스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곤조곤 주고 받는 사쿠와 아키의 대화들이,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둘의 유대가 그 어떤 소설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별

  아프기 시작한 아키는 결국 호주로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 즈음에는 그도, 그녀도 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쿠는 ‘언제라도 또 갈 수 있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키의 병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 악화만 되며 서로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더 늦어지기 전에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아키가 공항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그녀는 떠나게 됩니다.
 
  아키가 떠나고 이어지는 사쿠의 서술들이 담담한데도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물 속에 잠겨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어떠한 단어도, 문장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진공 속에서 없는 아키를 끝없이 추억하고 기억하지만 흐려지는 기억 속에 그녀의 뼛가루를 다 보내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별
  
  사쿠에게는 아키와의 이별이 두 번일 듯 합니다. 첫 번째 이별이 아키의 죽음이었다면 두 번째 이별은 사쿠가 아키를 보내는 이별입니다. 이 두 번째 이별 때문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진정으로 좋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좋아했던, 사랑했던 이가 먼저 떠나 버리게 되면 쉽게 보내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묻고는 그 추억이 오래되고 닳고 닳아 잘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쿠는 한참 뒤에 새롭게 사랑하게 된 사람과 방문한 봄의 학교에서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아키를 그제야 보내주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를 새로운 사람과의 사랑으로 치유하고 앞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읽으면 항상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교 교양강의에서 만난 한 교수님입니다. 그 교양강의는 한 학기 동안 간단한 수필들을 쓰는 수업으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의 주제가 있었습니다. 학기의 중간 즈음에 ‘슬프게 하는 것’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면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며 교수님의 ‘슬프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나이와 같았을 때,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로 떠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슬퍼진다고, 슬프게 하는 것은 그의 존재라고 하시는데 일렁이는 눈이 담담한 말투와 상반되어 더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깨달았습니다. 아, 교수님은 아직 보내지 못하셨구나. 그 두 번째 이별을 하지 못하신 채 간직하고 계시는구나. 학생들과 자주 소통하시곤 했던 교수님의 SNS 사진과 글들은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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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가 떠난 후의 끝부분이 조금 남아 그 나머지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었습니다. 사쿠가 아키를 마침내 보내주는 그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을 덮는데 창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 때의 잔잔했던 구름들 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예쁜 몽글거리는 구름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사랑과 두 번의 이별을 겪게 되면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덮힌 흔적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더 아름다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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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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