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 [문화]

화양연화를 보며
글 입력 2017.03.2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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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 [문화]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는, 그 불균형 안에서만 균형을 찾는다. 그러니 홀로 잠든 그/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손보미 「산책」 해설, 신샛별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 중
 


나의 연인은 내게 등을 진 채 잠을 자고, 그는 꿈을 꾼다. 남아 있는 나는 꿈에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때로는 그에게서 등을 지고 꿈을 꾸는 나를 바라보다 그는 산책을 간다. 그렇게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비대칭의 관계는 사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산책을 나감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니까, 지속가능한 것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연인은 어디까지나 타자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일은 괴롭다. 연인의 장점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연인 자체를 사랑하는 것도 아닌 우리는 연인이 가진 타자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명령받았고 타자에 대한 괴로움은 끝없을 거다. 하지만 끝없는 불안과 갈망, 그를 향한 애절한 몸짓 모두 영원할 수밖에 없음을 감지하면서도 그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서) 사랑에 메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불균형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찾을지 모를 균형을 위해, 어쩌면 불균형이라는 균형에 속박된 채 아마 그렇게 사랑을 이어나갈 것이다.
    
연인들의 관계를 그린 많은 영화나 책을 보면 그 관계들은 가지각색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서 통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모든 연인의 관계는, 에로스의 비대칭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은 관계에는 이미 서로의 타자성을 침식시켜버린 자아 두 개가 대립하고 있을 뿐일지 모른다.
 

[화양연화]
 
표지.png
 

이런 연인 관계의 불안함, 하지만 더욱 애틋하고 필사적이어 지는 그런 관계를 그린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계는 사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거나, 사회적 편견과 여러 규제에 갇힌 ‘로미오와 줄리엣’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묘하고 아슬아슬했던 압도적인 분위기는 관계에 있어 필연적인 불안함이었다.

넘어설 수 없는 선을 바로 앞에 두고 그 선을 넘을까, 넘어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고 덥석 붙잡았다 뿌리치길 반복하는. 어깨에 기대거나 손을 잡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 마저도 결심이 필요한, 그들의 불안한 관계를 보고 있자니 타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래서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말이 자꾸만 무색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그들의 그 순간을 가장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능할 뿐, 타자, 완벽한 타자로서 다가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보다는 고통,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 과거를 추억한다. 때때로 떠올리고 마음 아파하기도 할 테고, 서로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궁금해 하며 그 순간이 사실 가장 아름다웠던 때였음을 깨달을지 모른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영화 삽입 구절.


 
그렇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볼 수 밖에 없고, 희미하게 기억하는 그 순간은 아름다웠다고 이름 붙여질 수 있으나 그 순간 그들의 사랑은 불안함 속에 아슬아슬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잔 같았고 그건 ‘아름다웠다’ 라는 말로 간편히 지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png
 
먼지 낀.png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png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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