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힙합의 미래 [문화전반]

달라진 위치, 달라져야 하는 목소리
글 입력 2017.03.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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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논란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최근 몇 년 사이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 보면 군대에서도 뒤로 할 걸 국가안보
여성의 동성애는 분명 나로인해 감소
왜냐면 내 flow에 흥분하거든 레즈비언도
-비와이의 'f5' 中-


작년에 한창 인터넷상에서 성소수자 비하로 논란이 되었던 가사이다. 물론 이 글은 특정한 힙합뮤지션 한 명을 저격하기 위한 게 아니다. 차라리 이런 논란이 한 힙합뮤지션 한 명에게만 국한된 문제라면 좋겠다. 문제는 이런 가사가 비단 비와이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와이 뿐만이 아니라 송민호, 블랙넛, 아이언 등 수많은 힙합뮤지션들의 가사가 폭력적인 표현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이런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힙합은 원래 그런거다’라는 말로 논란을 일축시키려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원래 힙합은 이런 음악’이라는 주장. 정말 그럴까?  



힙합은 원래 그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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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좁게는 7,80년대 미국 땅에서 젊은 흑인들이 미국 보수층을 겨냥해 만들어진 음악을, 넓게는 그들이 향유하는 독특한 문화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힙합은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흑인들이 주체가 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저항적인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힙합은 기득권에 저항하기 위한 언어이며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차별받는 입장에 놓인 자들이 기득권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다 보니 욕설이 등장하고 표현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저항과 반항, 기존 질서의 전복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그런 표현들은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힙합은 원래 그런 음악'이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에서의 힙합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들이 기득권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가사와 여성혐오의 내용을 담고 있는 가사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에 퍼진 힙합은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다만 우리나라는 문화적 특성상 인종 간의 갈등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 컸기 때문에 미국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힙합이 발전했다.  미국 땅에서의 힙합이 '차별받는 흑인들의 음악'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다면 우리나라에서의 힙합은 '반항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비주류 음악'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던 것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힙합은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리쌍의 길과 개리를 포함한 많은 힙합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힙합과는 상관이 없는 예능프로에 나가야 했다. 2009년 어느 날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에서 타블로는 힙합가수들을 불러놓고 ‘힙합특집’방송을 하며 힙합도 많이 사랑해달라고 이야기했다. 2013년 여름, 다이나믹 듀오는 ‘뱀’으로 공개음악방송에서 데뷔 14년만에 1위를 하며 '한국 힙합에 좋은 음악이 많으니 사랑해 달라'고 소감을 밝혔다.(OSEN 뉴스참조. http://osen.mt.co.kr/article/G1109638797) 비주류였기에 이 때의 힙합은 '이렇게 힘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힙합을 한다'라고 이야기할 거리가 있었다. 힙합을 한다는 것만으로 비주류임을 선언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주류 음악을 비판할 수 있었다. 미국의 힙합이 그랬듯이 이 당시 우리나라 힙합 또한 거칠고 폭력적인 표현들이 '비주류 음악' 이라는 범주 안에서 일종의 '패기'이자 '객기'로 용인되었다. 



주류가 된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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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서 방송했던 힙합&역사 프로젝트 '위대한 유산'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과거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호소가 무색할만큼 힙합은 주류 음악이 되었다. 오로지 힙합을 주제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많은 힙합 곡들이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작년 <무한도전>에서는 힙합과 역사를 콜라보하는 프로젝트까지 했었다. 문제는 힙합이 그 세력을 넓힌 배경에 있다.

 2013년 있었던 스윙스와 이센스의 디스전은 많은 사람들이 힙합과 그 문화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해 곧 여섯번째 시즌 방송을 앞둔 Mnet의 <쇼미더머니>는 방송될 때마다 의도적으로 논란을 일으켜 인기를 끌어 왔다. 즉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논란으로 그 장을 넓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부분이 마치 힙합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더 자극적으로 큰 논란을 만들고자 하고 거기서 희생되는 것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저항정신에서 출발한 힙합이 우리나라에서는 역으로 그들을 공격하는 음악이 되어버린 셈이다. 알맹이없이 자극적인 이야기만이 힙합에서 되풀이된다. 힙합이 주류 음악이 되어버린 지금, 그들의 자극적인 가사가 비주류의 패기요 객기라고 말할 핑계조차 잃어버렸다.



달라져야 할 목소리



 길거리 어디에서나 힙합이 나오는 시대에, 더이상 거친 욕설과 사회적소수자들을 비하하는 가사를 쓰며 '우린 비주류니까 괜찮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힙합의 위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힙합이 하는 이야기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논란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면 이제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랩퍼 슬릭(Sleeq)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많은 힙합 노래 가사 속의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노래를 냈고 키디비(KittiB)역시 'Nobody's perfect'를 통해 노래 속에서 성적대상화 된 여성이 아닌 실제 여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른 목소리들이 힙합씬에 등장하고 있다.

 화자와 청자가 있다는 점에서 음악 역시 넓게 보면 대화의 한 방식이라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악기나 곡조보다 MC의 목소리와 가사가 더 중요한 힙합은 다른 음악 장르보다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은 어떤 이야기든 음악으로 끌어올 수 있다. 지금처럼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하하지 않아도, 의미없는 욕설범벅이 아니더라도, 할 이야기는 많다. 노래해야 할 부조리는 세상에 넘쳐난다. 힙합이 논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달라진 위치에 걸맞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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