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하는 거 아니여?" 연극 개, 돼지 - 세우아트센터

글 입력 2017.03.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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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 포스터_700px.jpg
 

    사회의 병폐가 가져오는 결과 중 가장 참혹한 건 구성원의 주체성 결여다. 사회의 폐단이라 이를 것은 언뜻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많겠지만, 아마 기본중의 기본은 우리와 같은 사회구성원들을 살아가게 하는 올바른 제도와 규칙의 부재가 아닐까? 아니, 차라리 부재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렇담 견고한 체계의 (재)정립이 수월할지도 모른다. 현 사회의 곪고 병든 모습은 이제 부끄러운 사건의 한 획을 긋는 것을 넘어서서 개인의 주관까지 흐릿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연극 속 세 이야기들처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 직관적으로 떠올린 바로 그 이야기(들)처럼.
    민중. 정치. 사회. 제도. 권력. 부패... 이 퍽퍽하고 지루한 단어들은 놀랍게도 그 어떠한 것보다 역동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아주 자극적이고, 또 먹먹한.

    우리가 달려온 사회를 러닝트랙의 형태로 비유해보자면, 우리가 달려온 트랙은 곧고 긴 단거리 혹은 장거리 트랙이 아니라 장애물 달리기 트랙의 형태다. 끊임없는 사건에 부응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는 우리. 잠깐 뜨겁다 금세 식는 우리. 생각이 있는 척 고고하게 굴지만 사실 귀가 종잇장만큼 얇은 우리. 글쎄, 어쩌면 연극의 제목이 알려주듯이, 우리는 지나치게 동물적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탈을 쓴.



    본 연극은 세 가지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야기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세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담은 게 아니라 장면 단위로 잘라넣어 각 이야기들의 기승전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마치 파노라마 사진들을 죽 모아놓은 것처럼 장면, 장면들로 과거를 추측하기도, 그 다음 장면을 예측하게도 한다. 다만, 너무 잦은 장면들의 나열에 개인에 따라서는 자칫 분주함을 느끼거나 정신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전개가 나라와 시대, 사건들이 다름에도 공통적으로 비춰지는 '민중의 모습이랄 것(?)'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건의 연속 때문에 여섯 명의 배우들이 각 이야기들에서 1인 다역을 맡는 형식이다.  그럼에도 몰입에 결코 방해되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실력이 다했다고 본다! :) 휙휙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배우들의 감정이입도 제각기 바뀌어 세 편의 이야기가 온전하게 세 편으로 다가왔다.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경희>는 '여성도 사람이다.'라고 '홀로' 외치는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경희>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여자라면 ~해야해.'라는 참 답답한 프레임을 뒤집어 쓴 인물과 여성주체성을 찾으려하는 인물. 여자라서 언급하는 것, 하는 모든 것에 멸시받는 인물을 바라보는 건 정말 힘들었다. 화가로서의 주체는 물론, 여자(혹은 사람)로서의 주체마저 잃고 마지막에 울부짖는 모습은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가슴아팠다. 인상적이었던 과장된 몸짓과 행동과 의성어.

 5.18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를 담은 <국풍81>은 온갖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당시 상황 속에서 3S(Sex, Screen, Sports)에 허덕이는 무지몽매한 민중들의 주권쟁취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정치적 권력을 쥐고 허구의 기사를 쓰는 기자의 발 밑에서 괴기스러운 목소리로 "Sex, Sports, Screen"을 탐하며 바닥을 기는 장면으로 민중들을 표현한 것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소름돋았다고 할까. 그들의 얼굴에 씌워졌던 개돼지탈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10년동안 숨겨져왔던 대학 풋볼팀 감독의 성폭행 사건이 주된 스토리인 <터치, 다운>은 앞선 두 편과는 다르게 미국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동적인 몸짓과 발구르기가 인상깊었다. 무대 위에서 풋볼팀을 표현하기위한 주된 방법은 동작이었다.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검정색 무대 위에서 짜릿한 풋볼 경기를 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는 이들은 물론 극단 내에서도 고민해야 할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나로서도 연극이 끝난 후 계속 머릿속에서 연출에 대한 질문이 맴돌았고, 같이 본 친구에게 여러차례 묻기도 했다. 풋볼팀 감독이 팀원들을 성폭행하는 장면에서 성행위를 묘사했는데, 이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세나 소리, 움직이는 정도가 과격하고 직접적이어서 내가 수치심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는 해당 장면이 반복적으로 꽤 자주 나왔다.

 연극연출이나 극본제작과정에서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이 불가피하게 들어가야 할 때, 그 정도나 표현의 적절한 정도를 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연극 내에서 필요한 표현을 넘어서서 가학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간 친구는 실화자체의 충격을 담기 위해서 필요했을거라 했지만 나는 의견이 약간 다르다. 직접적인 행위묘사는 충격과 현실감을 담고있어 적절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횟수가 조금 줄어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다소 불편했다.

    이 세 이야기가 (많고 다양하고 또 힘든 과정을 거쳐) 목표점에 도달하는 그 순간은 정말 벅차다. 우습지만, 개돼지가 아님을 확인받는 기분이기도 하다.



    세 이야기를 모두 담기위해 무대 위에는 어떠한 설정도 들어가지 않는다.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소품들과 그들이 바꿔입는 옷이 전부다. 그럼에도 극에 몰입할 수 있어 좋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흥미로웠다. 마치 인기드라마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음 화 예고를 하는 것처럼...?! 장면이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회의 이면을 다뤘기에 뻔하거나 무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혀.. 이야기 전달도 좋았고 극 자체로서의 재미도 있었다. 상징인 '개, 돼지'에 대해서도 극을 보는 내내 고민하게 한다. 현 사회의 개돼지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정의구현 속에서 잠시나마 함께 처절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 간접체험(?)에 뿌듯한 내 자신도, 무기력하게 정치기사를 외면했던 지난 날들도, 여러모로 부끄럽다. 눈 먼 개돼지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 연극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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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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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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