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개, 돼지' - 무사유의 삶을 경계하자

글 입력 2017.03.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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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를 살아가던 화가, ‘나혜석’의 이야기 <경희>, 1980년대를 살아가던 민중과 그를 탄압하는 군부의 모습을 그린 <국풍 81>, 그리고 2000년대 미국 풋볼팀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다룬 이야기 <터치, 다운>.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실화이고, 각각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각기 다른 세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 ‘개, 돼지’를 주제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1. 나혜석의 이야기, <경희>


나혜석은 우리가 국사 교과서를 펼쳐 근현대사 파트로 넘어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조선 최초의 여류화가. 하지만 연극 <개, 돼지>는 화가로서의 나혜석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혜석의 삶을 조명한다. 여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그녀가 어떤 주체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고 사회는 그런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

그녀의 삶을 다룬 이야기 <경희>는 나혜석의 친한 친구 경희가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혜석을 만나며 시작한다. 귀국한 혜석은 재력가 김우영과 결혼을 하여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우영 또한 그녀를 재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준다. 그러나 그의 지원 하에 열린 그녀의 전시회 당일날 기자들은 ‘화가’로서의 그녀의 삶과 그녀의 생각,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것이 아닌, 그녀가 오로지 ‘여성’이라는 사실에 기초한 질문들만을 던진다. 반복되는 질문에 분노한 혜석은 자신의 연애관과 정조관을 말하며 남친의 치부를 드러내자 그는 매섭게 되돌아선다. 그리고 사회는, 당시 사회에 맞지 않는 사상을 가진 나혜석에게 냉담하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그녀는 행려병사하기에 이른다.

 
#2. <국풍81>, 탄압하는 정부와 그에 맞서는 민중, 그리고 그를 모른척하는 민중의 이야기


국풍81이라는 소재는 생소할 수 있다. 이 축제는 전두환 정부가 ‘민족 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국민들을 우롱한 축제에 불과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게 된 전두환 정부. 그에 항거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하던 정부, 그리고 그를 눈감고 날조하여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 허문도. 그 덕인지 그는 신군부 하에서 전두환의 비호를 받아 승승장구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리려던 청년을 탄압한다. 민중들은 그의 죽음에 감정적으로 동요하나, 신군부는 그들을 잠재우기 위해 3S, 즉 스포츠, 섹스, 스크린을 활용하여 그들의 눈을 돌리려 한다. 국풍81이라는 문화 대축제를 열어 야간통행금지 해제 등으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정치적 분노를 쾌락으로 대체시키려 한다.

 
#3. <터치, 다운>, 권력을 지닌 지도자의 폭행 그리고 그에 굴복하는 사람들


미국판 ‘도가니’라고 불리우는 이 사건은 성폭행 소재를 다룬다. 미국 내에서는 ‘샌더스키 사건’으로 유명한 이 사건은, 전 펜실베니아 주립대 미식축구코치였던 제리 캔더스키가 ‘코치’라는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어린 선수들과 입양아들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를 목격한 한 선수는 분노하여 이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 선수로서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두려워하던 주장 해리는 사건을 조작 은폐하여 발표하고, 그에 따라 군중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그리고 언론 플레이를 위한 감독의 자진사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대중들은 급격히 자신의 태도를 바꾸기에 급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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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건의 현재성: 여성 인권, 문화 정치, 그리고 성폭행


이 연극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은 질문은, “왜 이 세 사건을 엮었을까?”였다. 이 연극은 <개, 돼지>를 제목으로 삼아, 한 사건을 심층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옴니버스 식 구성이라는, 다소 산만해질수 있다는 페널티를 무릅쓰고 왜 이 세 사건을 엮었을까? 이 세 사건은 명백히 구시대의 일이지만, 현재에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일이며, 각 사건에 대응하는 민중의 태도는 시대와 공간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나혜석의 이야기 <경희>를 살펴보자. 관객들은 동경 유학을 갔다온 혜석을 부러워하지만 사회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경희를 보며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또, 자유 연애 사상과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는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전근대적인 사람”이라며 마음 속으로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사회는, 비록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나, 이 극을 통해 눈 앞에 펼쳐진 1920년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과거의 이혼한 혜석에게만 냉담한 시선을 보냈을까?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이혼한 남성과, 이혼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혼 후 힘든 점으로 남성은 외로움을 꼽은 반면, 여성은 심리적 위축감을 호소했다. (http://uberin.mk.co.kr/read.php?no=397172&year=2016) 이혼녀라하면 여전히 사회는 여전히 그녀를 ‘문제 있는 여자’로 낙인찍기 일쑤다. (http://cafe.naver.com/s20050915/159734) 정조관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탈근대의 시대이나 사회의 여성에 대한 정조 관념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부가적 설명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너무나 길다고 생각하여 생략한다)
 

<국풍 81>은 신군부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한 그들의 계획을 보인다. 다름아닌, 문화 예술을 활용하여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야간 통행 금지 해제로 미끼를 던지고 술 음식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진 축제, 즉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민중을 유혹하려한다. 즉 문화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저러한 대규모 축제 기획으로 꾀어내려는 경향은 덜하지만, 문화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하고 대중을 우민화 하려는 경향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사소하게는 정치적 스캔들을 덮기 위해 연예 스캔들을 터뜨리는 행위부터, 최근의 문체부 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터치, 다운>이 보여준 풋볼팀 코치에 의한 성폭행 사건, 이것도 현대 사회에서 근절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절대적 갑인 ‘코치’라는 위치에서 약자인 학생들, 즉 코치의 선택을 받아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절대 을인 학생들은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 이를 단순 성폭행 사건을 넘어서 절대적 권력의 우위에서 비롯된 기형적 형태의 횡포라고 본다면, 이에 대한 사례를 사회에서 찾아보는 것은 아주 쉽다. 권력자의 횡포, 살기 위해 그를 견디는 피해자들.

 
연극 <개, 돼지>는 현재에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 인권 문제, 정부의 우민화 정책, 권력자의 횡포 문제를 과거의 나혜석 사건, 국풍81, 미국 풋볼팀의 성폭행 사건을 통해 보여주려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의 이 사건들에 대해서 대중들은 이러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의 당신은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라고 끊임없이 묻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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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유의 삶을 경계하고 반성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지금,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개, 돼지’일 수 있다. 바로, 비판적 사고 없이 ‘무사유(thoughtlessness)’의 삶을 살 때에 말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하면서, 실제로 사유를 통해 도출된 결론을 주장(흔히 한 집단, 한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과는 노선을 달리한)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한다. 남성 우월 주의였던 1920년대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주장한 혜석에게, 군부가 제공하는 유혹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안돼!”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문제를 만들지 말자며 쉬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진실을 알리자”라고 하던 맥컬리에게, 사람들은 어떠한 시선을 보냈던가.

“왜 나서서 일을 만들고 그래”, “평소 살던 대로 살면 되지 왜 그러냐” 등의 시선을 보내지 않았던가. 여성 인권을 부르짖는 혜석에게는 “남편한테 잘 순종하면서 살면 되지 여자가 뭘 그리 나서?”의 시선을, 광주에서의 진실을 밝히려는 청년에게 “가만히 입 닫고 있으면 돈도 주고 안전해지는데 왜 스스로를 사지에 몰아 넣어?”라는 시선을, 코치의 성폭행 사건을 밝히려는 맥컬리에게는 “너 그러다가 출전 보장 못 받아, 팀이 잘 나가고 있는데 왜 분위기를 망치려해?”라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나. 무서운 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저러한 생각을 가지면 ‘정말 살기 쉬워’진다. 나만 입을 닫으면, 나 혼자만 참으면 그대로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고..
 
연극 <개, 돼지>는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사상이, 사회에서 우세한 생각이라고 해서, 자신의 배를 따뜻하게 해주고 곯지 않게 해주는 생각이라고 해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도와주는 생각이라고 해서 비판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멈추지 말라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무사유의 삶을 사는 순간 개, 돼지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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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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