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다른 시선에서 영화보기] 미녀와 야수

글 입력 2017.03.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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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디즈니 열풍을 불러온 바로 그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보고 왔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미장센과 연출들에 놀라고, 미녀와 야수의 러브스토리와 아름다운 음악에 마지막까지 눈물을 떨어뜨리며 왔다. 하지만 디즈니가 만들어 낸 그 아름다운 장막을 걷어내면 뭔가 찝찝하다. 이 텁텁한 기분은 어디에서 왔을까? 과연 미녀와 야수는 우리가 본 그 반짝이는 화면처럼 마냥 아름답기만 한 영화였을까? 주관에 입각한 미녀와 야수 다른 시각에서 보기 시작한다.
 


▶ 야수가 좋아한 건 미녀다. 그것도 능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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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와 야수의 표면적인 주제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마음 속에 있어’다. 그러나 일단 여주인공은 시작부터 ‘마을 제일가는 미녀’다. 그렇다. 이러나 저러나 여주인공은 일단 예뻐야 하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예쁘기만 했다면 이제는 ‘예쁘고 현명’하다는 것. 미녀와 야수 속에서 벨은 독서를 좋아하고 아버지의 작업을 도와줄 뿐 아니라, 영화 속 여자들 중 유일하게 말을 탄다. 넉넉하게 살기 힘든 요즘, 신붓감도 그저 예쁜 여성이 아니라 맞벌이를 같이 해줄 수 있는 예쁜 여성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실로 놀라운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무능력한 남자,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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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남자주인공 야수 설정을 좀 보자. 야수는 정말 그렇게 멋진 사람일까? 영화 후반부에야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설정이 공개 된다지만 야수는 그냥 파티광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대가로 야수로 사는 벌을 받았으니 된 것이다’라고 말하기엔 또 야수가 한 게 없다. 야수의 일상을 보자. 야수는 하는 일이 없다. 그는 손님을 맞지도 않고, 요리를 하지도 않고, 청소를 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기 때문에 사물로 변한 시중들에게 얼마나 히스테리를 부렸으면 그가 다가가면 시중들의 웃음소리가 멈출 정도란다. 심지어 사람들이 쳐들어와 자신의 시중들이 몸을 바쳐가며 싸울 때 이 야수는 벨이 없으니 아무 상관도 없다며 그냥 가만히 있는다. 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왕인가. 영화 내내 그가 한 일이라곤 미녀를 사랑한 것뿐이다.


 
▶ 마법에 걸린 시중들은 정말 착한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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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벨과 야수지만 영화를 아름답게 채우는 것은 마법에 걸린 시중들이다. 벨은 등장과 함께 마법에 걸린 식기들에게 사랑받는다. 루미에, 포트 부인 등 시종들은 ‘이 성에 여자! 그것도 저렇게 예쁘게 생긴!’이라며 벨에게 마술 같은 식사를 대접하고 방을 청소해준다. 뿐만 아니라, 벨이 성에 눌러 앉을 수 있도록 온갖 따뜻한 말과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벨이 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 탄식한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이들의 속내는 이것이다. ‘우리 주인님은 야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니까 너가 저 사람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마법에서 풀릴 수 있어!’ 그러니까 이들은 영화 속처럼 깜찍한 큐피드가 아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악독한 악당일지도 모른다!

 

▶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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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자를 야수로 만든 요정은 진실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며, 야수가 진실된 사랑을 하게 되면 저주가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자 그럼 진실된 사랑이란 결국 ‘마음씨 예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녀와 야수>에서 마음씨 예쁜 사람을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미녀다. 벨은 야수가 대화가 통할 정도로 유식하고, 자신을 잘 챙겨주었으며(그래 봤자 새장 속 새였지만) 말미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갈 수 있도록 자신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모두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진실된 사랑을 한 것은 야수가 아니라 미녀다. 결국 야수의 저주가 풀린 것은 야수 덕분이 아니라 벨 덕분인 것이다.
 

 영화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이것은 단순히 나의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미녀와 야수>가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아름답게 포장되기는 부족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사화 된 <미녀와 야수>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혹시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미녀와 야수 다른 시선에서 보기 여기서 마친다.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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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Mila
    •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진실된 사랑을 한 건 야수가 아니라 미녀네요!
      현실적인 시선에서 본 <미녀와 야수>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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