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을 위해 예술이 해줄 수 있는 것, 당신만을 위한 말 [시각예술]

안규철
글 입력 2017.03.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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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갤러리에서는 2017년 2월 21부터 3월 31까지 약 한 달간 안규철의 <당신만을 위한 말>전을 개최하고 있다.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매우 문학적이다. 흔히 그를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라고 소개하는데, 나는 그를 시인과 같은 작가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는 예술을 ‘인생에 빠져도 아무 지장도 없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러한 예술을 업으로 삼으면서 우리에게 혹은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가? 그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만을 위한 말이 무엇일지.. 그의 개념미술은 오브제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삶과 현실에 맞닿아있는 생각들을 주제로 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안과 위로를 주고자한다. 즉, 현실과 동떨어진 난해하고 어려운 미술이 아닌 오직 당신만을 위한 미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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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쪽 전시장에 들어오면 가장 중앙 벽면에서 마주하게 되는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작품은 이번 전시 이름과 같은 만큼 전시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펠트로 만들어진 부조형식으로 된 작품으로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전시장에는 작품 뿐 아니라 작품 스케치 역시 전시되어 작가의 작품 기획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거대한 귀, 듣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들어간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고백, 돌아오지 않는 소리, 버려진 기억들, 블랙홀 비밀의 무덤’이라고 메모해 놓았다. 즉, 작가는 본인 스스로 관객에게 그들 개개인만을 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 것이 아니다. 결국 본인을 위한 말은 타인이 아닌 본인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시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말들, 고백들을 이 ‘거대 귀’에 털어 놓으면서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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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노/의자>라는 작품이다. 의자 다리 부분이 노로 되어있는 거대 작품 이었는데, 작가는 작가노트에 이 작품에 대해 ‘어떤 나무는 배를 젓는 노가 되고, 어떤 나무는 책을 읽는 의자가 된다. 의자가 되었지만 노가 되고 싶어 하는 의자, 앉아있고 싶어 하는 주인을 어디론가 데려다주고 싶은 의자. 멈춰있기를 거부하며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의자’라고 기술해 놓았다. 앉아있길 바라는 주인을 어디론가 데려다주고 싶어 하는 의자라.. 그의 사고 속 의자, 사물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를 사고하게 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하나의 뮤즈이자 사고의 시작이다.

 의자는 배를 저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고 무엇도 될 수 없고 아무에게도 의미가 될 수 없다. 이런 이들이 갖는 부끄러움, 우울, 낭패감은 곧 우리의 정서이기도 하다. 현실과 이상은 맞닿을 수 없고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지만 현실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즉, 이는 항상 위험을 감수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현실에 안주하며 이곳에 멈춰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노를 가진 의자는 누군가에겐 다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겐 잠시 멈춰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이 어딘가로 나아가고자 했던 작품이라면 <머무는 시간 Ⅰ,Ⅱ>는 우리에게 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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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아래로 구르도록 설치된 구조물인 이 작품들은 중간 여러 구조물들에 의해 나무공의 낙하를 최대한 지연시킨 것이다. <머무는 시간 Ⅰ>은 벽면에 지그재그 형태로 미세한 경사를 이루며 설치된 목재 레일을 따라 나무공이 천천히 굴러가게끔 한 작품으로 작가가 폭우가 내린 다음 날 아침 흘러넘친 계곡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저 비가 바다로 가서 계곡에 머무는 시간이 없다면, 이런 숲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시작과 끝 사이의 잠시 유예, 이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일을 지연 시키는 요소들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들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조금은 멀리 떨어져 한 발짝 뒤에서 우리의 삶을 보았을 때 불필요한 듯 보였던 경사들은 우리의 장애물이 아닌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고 단단하게 만든 버팀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머무는 시간>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공이 천천히 내려가는 순간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길 바랬다고 한다.

 이번 안규철의 개인전은 작품들 뿐 아니라 작업 스케치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서 등장하면서 작품의 서사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혔다. 작품들만을 보았을 땐 장남감이나 상상 속 물건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작가 노트가 아니었다면 "도체 이 장난감 속에서 나만을 위한 말은 무엇일까!"라고 탄식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미술에선 작가의 의도는 관객의 상상을 한정짓는다라는 우려로 숨겨지고 배제되어 왔다. 이로 인해 우린 현대미술, 개념미술은 난해한 것으로 결단짓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작가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독특하고 신기한 이 작품들 모두 일상적 사물에 대한 자가의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그의 스케치를 통해서 알게된다. 그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글로 인해 그의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탄생해 우리에게 말하거나 때론 위에게 귀기울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친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 감명을 선사할 수 있는 위로가 될 것이다.


[김휘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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