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베르 카뮈 [오해] 돌아보기 -2 [문학]

[오해] 1막 : 비극의 시작
글 입력 2017.03.2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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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billetreduc.com(공연티켓)


  희곡 [오해]는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 중에서 주로 언급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카뮈의 노벨상 수상작인 [이방인]을 비롯해 [페스트], [시지프 신화] 같은 굵직한 작품들이나, 그의 아이디어 노트를 시대별로 구분해 세 권으로 편찬한 [작가노트 I, II, III] 시리즈에 비하면 [오해]의 명성은 낮은 편이죠. [오해]는 1944년 5월 출판, 6월 초연 이후 상연이 금지되었다가 10월 무렵 상연이 재개되었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던 제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 시기가 시기인 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초연으로부터 본 공연이 재개되기까지 네 달 남짓이 어영부영 지나가버렸으니 운이 좋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모로 주목받지 못한 작품이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놀랄 만큼 공부할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오해]는 총 3막짜리 극으로, 1막:8장, 2막:8장, 3막:4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알베르 카뮈 [오해] 돌아보기' 시리즈는 1, 2, 3막을 순서대로 읽고, 키워드를 통해 작품을 분석해본 후, 제가 무대에 올랐던 각색본을 돌아보는 과정으로 최소 5회 이상 연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 첫 스텝으로 1막을 읽어볼 텐데, 그에 앞서 제가 고른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돌아온 탕아, 이방인, 숙명(혹은 신), 오해, 진실, 알베르 카뮈

  그럼 위 키워드들을 염두에 두면서 1막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해(Le Malentendu)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등장인물 : 마르타, 어머니, 얀, 마리아, 늙은 하인


1막 : 비극의 시작

  1막은 전체 작품의 발단과 전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분량으로 보자면 세 막 가운데 가장 양이 많습니다. 덕분에 먼저 설명되어야 할 상황과 제시되어야 할 주제들이 잘 설명되어 있죠. 대본을 공유하기에는 너무 길기도 하고, 저작권(혹은 번역)문제도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요약해보았습니다.

1막 1장
여인숙의 응접실. 어머니와 마르타가 조금 전 방문했던 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마르타의 관심사는 그가 부자인지, 독신인지 하는 것.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남는 것이 있어야 하고, 실종된 이를 찾으러 올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는 지쳐있는 것 같지만, 마르타는 의욕적이다. 인생이 주는 고통보다 덜한 휴식을 준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마르타는, 이번에야말로 태양과 바다의 나라에 가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즈음에 늙은 하인이 들어와 카운터 뒤에 앉는다.
1막 2장
얀과 마리아가 다가오자 창가로 숨는 늙은 하인. 얀이 안으로 들어오자 말없이 퇴장.
1막 3장
돌아온 탕아를 위한 귀향만찬을 기대했던 얀에게 가족들은 돈을 받고 맥주를 팔았다고 한다. 가족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함에 실망한 얀. 그럼에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관찰하겠다는 핑계로 여인숙에 남으려 한다. 이에 마리아는 '마음은 가장 단순한 말로 나타내야 하는 법'이라며 진실되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릴 것을 종용한다.
1막 4장
늙은 하인이 등장하고, 마리아는 문 뒤쪽에 숨는다. 늙은 하인 퇴장 후에 다시 나온 마리아는 여전히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대로 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얀은 고향을 떠나, 가족에게 잊혀진 상태로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부고들 들은 이후, 어머니를 위해 맹세했다며, 불안해하는 마리아를 달래 돌려보낸다.
1막 5장
마르타가 들어와 얀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하며 숙박계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신분 증명을 위해 무심코 여권을 받으려는 찰나 늙은 하인이 들어온다. 마르타는 여권을 펼쳐보지 않고 돌려주며 숙박계를 마무리짓는다. 얀은 그녀가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까 계속해서 떠보지만, 마르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1막 6장
방이 준비되자 어머니가 내려온다. 어머니와 대화하게 되자 얀은 더욱 은근하게 묻는다. "아들이 있다면 더 편하지 않으실까요?" 그러나 냉랭한 마르타의 반응과 어머니의 부정에 한 걸음 물러난다. 마르타가 떠난 후, 무심코 아들 대하듯 행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혹시나 희망을 가져보지만, 역시나 뒤따르는 부정에 열쇠를 들고 털레털레 방으로 올라간다.
1막 7장
어머니가 혼자 남아 독백한다. 방금 우리 계획이 탄로날 뻔했는데 그는 눈치채지 못했어. 차라리 눈치채고 떠나주었으면. 나는 지쳐버렸어. 그만 쉬고 싶어.
1막 8장
마르타가 들어와 망연히 앉아 있는 어머니를 다그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죽이고 돈을 얻어 이곳을 떠나자는 마르타를 어머니가 말려 보았으나, 끝내 마르타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극이 끝난다는 것이 특별한 반전이 아니기 때문에, 1장부터 그들의 살인 사실과 범행 동기, 범행 방법이 모두 설명됩니다. 두 모녀는 희망이 없는 유럽에서의 삶에 지쳐, 바다 건너에 있다는 '태양과 바다의 나라'를 꿈꾸며 부유한 독신 여행객들을 죽여 돈을 빼앗으며 살아왔습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 마을의 저수지에 버리는 방식을 통해 타살 혐의로부터도 멀리 도망칠 수 있었죠.

  이들은 삶이 너무나 가혹해서, 잠들듯이 편하게 보내주는 것 뿐, 우리가 하는 짓은 삶이 부리는 행패보다 유순하다는 핑계를 들며 자기 합리화를 해왔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했던 유럽이니, 일견 설득력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당시 유럽이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나 범죄는 범죄, 이들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 눈에 얀을 알아봤다고 해도 아무런 속죄 없이 행복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며, 또는 그들이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삶이 여기까지 온 것은 숙명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얀과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는 '태양과 바다의 나라'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느냐며, 사랑할 땐 한눈파는 것이 아니라고 얀을 설득합니다. 하지만 얀은 '고향을 떠나, 가족에게 잊혀진 채로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얀이 다시 '태양과 바다의 나라'에 돌아가, 아버지 뿐 아니라 나머지 가족 모두의 부고를 듣게 된다면 평생 마음 한 구석에 짐을 얹고 살게 될 것입니다. 얀이 과거의 죄책감에 매여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마리아 또한 순수하게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요. 따라서 그들이 이 여인숙에 발을 딛은 것 또한 숙명입니다.

  그런 이들의 비극의 시발점은 작은 오해였습니다. 오랜 살인에 익숙해진 모녀는 얀을 가족으로서보다 훌륭한 희생양으로서 먼저 알아보고,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그를 알아볼 수도 없었죠. 그리고 얀은, 가족이라면 당연히 얼굴을 보고 알아보리라는 기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양쪽의 오해가 시작된 것이죠. 이런 오해를 말없이 부추기는 것이 바로 늙은 하인, 곧 숙명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얀을 채 설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마르타가 여권을 보지 못하도록 흐름을 끊어버립니다.

  문학작품을 읽다보면, "아, 이 때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늙은 하인이 중간에 나타나지 않아 마리아가 얀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면, 마르타가 여권을 펼쳐보고 오빠를 알아봤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이 이루어졌다면 이야기는 더 이상 전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늙은 하인이 이 과정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마르타 모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비참한 인생)을 무심하게 방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길을 꼬아버립니다.

  1막이 작품의 발단과 전개에 해당하는 부분인 만큼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모든 것이 설명되었습니다. 덕분에 중요 키워드도 대부분 등장했죠. 이들은 2막을 거쳐 3막으로 가면서 더욱 불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마무리 단계에서는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입니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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