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맛있는 '카스테라'가 아닌 따뜻한 세계의 '카스테라'로 [문학]

글 입력 2017.03.20 01: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d.png
 
 
 박민규 작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무규칙 이종격투기의 문장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감각적이고 유쾌한 문장력을 갖고 있다. 책과 친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 읽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박민규 작가의 첫 소설집 ‘카스테라’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읽히는 대화체와 서사로 서술된 10 개의 단편들은 나를 웃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쉽게 쓰였으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므로 읽을 때마다 항상 나는 다른 세상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치 있는 문장 속에서도 이야기에는 항상 사회에 대한 통찰이 담겨져 있었다. 소설 속 사회의 모습이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신기하게도 ‘카스테라’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에서 아직 밑바닥인 남자들이다. ‘카스테라’에서는 대학생,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는 인턴,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는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푸시맨’ 알바를 하는 고등학생 등 고시원생, 유학생도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속해있었던 편한 곳을 떠나 새로운 사회로 내던져지는데, 그 곳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존경스럽다. 잘도 이따위 일을 사 개월째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턴은 모두 여덟 명. 즉 일곱 명의 경쟁자가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월급이라고는 말 못하겠고, 그저 왔다갔다 차비 정도를 받고 있다. 일은 거의 날밤을 새는 수준, 육 개월의 연수기간이 끝나야 그중 한 명이 정식사원으로 발탁된다. 그럼 나머지는? 글쎄다.’ - pg. 39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화성인들은 좋겠다. 그해 여름은 너무 무더워, 나는 늘 그런 상념에 젖고는 했다. 상고(商高)의 여름방학은 생각보다 길어서, 그런 상념에라도 빠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긴긴 여름, 게다가 나는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 오후엔 주유소에서, 또 밤에는 편의점에서.’ -pg. 69,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이곳에 온 지는 석 달째다.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왔다. 졸업을 하고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일흔세 곳이었다. 일흔, 세 곳.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 때문에 머리를 못 내미는 두더지의 기분이랄까, 아무튼 이 나라는 고장이다.’ - pg. 127~128 ‘아, 하세요 펠리컨’


 사회에 얼굴도 못 내미는 처지에 갇힌 사람들. 이들을 우리는 사회적 약자, 마이너리티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로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여겨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 명예, 잘나가는 직장, 실적 등을 우선시하고 사회 부조리가 판치는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니다.

 화성이 부러울 정도로 무더운 날씨, 짜증나고 찐득찐득한 환경, 마치 사회 초짜들에게 ‘너는 여기가 어울리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떠나’ 라고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를 가리, 나도 살고 너도 같이 사는 인생인데 말이다. 이렇게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항상 흔들리고 여기저기 떠밀리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삶을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장, 그리고 우리가 얻는 메시지

 
 어리숙하기만 하던 소년들이 소설 속에서는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는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워 알바를 전전하는 고등학생 ‘승일이’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딱 한 번 아버지의 직장에 찾아간 적이 있다.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에서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던 아버지. 책에서는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나의 산수와 같은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라고 서술했다. 그는 일찌감치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승일이는 지하철 ‘푸시맨’ 알바를 하다 자신의 아버지를 발견한다.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지하철에서 열차를 놓친 아버지를 위해 승일이는 거침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누르고, 찧고, 밀고 그랬다. 아버지의 폐에서 힘든 소리가 나온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아버지를 더 꾹 밀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고 난 뒤 아버지가 실종된다. 경찰도, 가족도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어느 날 벤치에서 단정한 차림새의 양복을 입은 기린을 발견한다. 승일이는 기린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신한다. 승일이는 그동안 가세가 회복된 일, 가족 이야기 등등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승일이의 ‘산수’에 의하면 그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거지만 그는 아직도 어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것이다. 힘든거 꾹꾹 누르며, 참으며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나’ 또한 성장한다.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친구의 집에서 기생하던 ‘나’는 친구의 어머니가 '나'를 빼고 계란을 주는 등 '나'의 등을 떠미는 느낌을 받아 독립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알아본 집이 월 9만원, 식사 제공해주는 ‘갑을고시원’. 그 곳을 방이라기 보다는 관이라고 표현하며 닭장의 닭처럼 자고 생활한다. 사실 컴퓨터만 없어도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컴퓨터를 처리하지 못해 항상 웅크리고 자게 된다.

 어느덧 밀실에서 지냈던 시간이 지나 그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아끼던 컴퓨터를 저절로 버리게 되고, 빚도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신이 밀실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이 힘들게 모으고 지키고 소유한 것들이 컴퓨터처럼 될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고시원을 생각하며 그만의 결론에 다다른다 :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아까워서 컴퓨터를 못 버리던 청년에서 모든 것을 잃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위로해 주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승일이도, 고시원에서 살았던 ‘나’도 불우한 환경에 놓인 건 매한가지지만 그들이 놓치지 않았던 건 세상이었다. 세상이 그들에게 고난을 주고 그들을 버렸을지는 몰라도 이 두 사람은 꿋꿋이 버티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각자 하나씩 마음이 아프고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 두 사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조금씩 성장통을 겪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카스테라’ 작품은 이 모든 10 개의 단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음이 시끄러운 냉장고에 ‘나’는 세상에서 소중하거나 해악한 것을 넣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넣고 그 다음 ‘아버지’, ‘학교’, ‘대기업’, ‘노숙자’, ‘대통령’, ‘미국’, ‘중국’까지 넣어버렸다. 이제는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악한지 구분도 안 되는 상태. 냉장고 속으로 모두 모인 세계는 뒤죽박죽 엉켜있기 보다는 하나의 따뜻한 ‘카스테라’로 변해있었다. 기존의 가치는 무너지고 하나로 합쳐지면서 ‘부패’가 없는 따뜻한 세계로 변한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에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추웠을 테니까. 많이 추웠을 테니까 말이다” 라고 서술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따뜻한 세계가 도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사회에 우뚝 홀로 선다는 것은 무척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처음 사회로 들어서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다. 차갑고 매정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따뜻한 카스테라 같은 작은 세계가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오기까지 우리는 버텨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카스테라’ 속 사회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같다. 2005년에 출판된 책인데 10년이 흐른 후에도 아직 비슷하다고 느껴질 뿐이니, 조금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김민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