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이파이 없이, 일상을 여행처럼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3.1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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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와이파이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곳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가만히 내가 할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켜서, 오늘 기분과 감성에 맞는 좋아하는 노래들을 선정하여 순차재생 설정을 해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거나, 노트북을 켜서 할 일을 하는 것은 어느새 일과가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이러한 일들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은 스타벅스이고, 우리 학교 주변에서는 카페씨, 커피빈, 아눅 등으로 순위를 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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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http://www.peoplepower21.org/notice/1329626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커피의 맛? 아니었다. 물론 맛있는 커피가 좋다.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들이, 종업원들이 정성스레 내려주는 커피가 좋다. 그러나 나는 맛을 구별할 만큼 뛰어난 미각을 가진 것도 아니다. 서울 도처에 깔린 것이 카페인데, 특히나 학교 주변에도 깔린 것이 카페인데, 나는 왜 어느 순간부터 그 중 저 카페들을 선호하게 되었을까? 커피 맛은 저 카페들이나 내 마음 속에서 아웃된 다른 카페들이나 비슷비슷한데 말이다. 서비스? 아니었다. 솔직히 서비스는 다 비슷비슷하다. 오히려 내가 자주 가지 않는 카페 브*송 사장님이 더 친절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콘센트와 와이파이(무선인터넷)의 기준으로 마음 속에 카페의 순위를 두고 가고 있던 것이다. 스타벅스의 경우, 집 앞 스타벅스이던, 학교 앞 스타벅스이건 노트북을 깔아둘 널찍한 테이블과 콘센트가 많이 구비되어있고, 와이파이도 KT 와이파이와 연계되어 카페 알바생에게 비밀번호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와이파이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씨의 경우도 콘센트가 여러 개 구비되어 있어 핸드폰이던 노트북을 충전하기 편하고 와이파이 연결도 용이하다. 커피빈과 아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만큼 와이파이에 종속된 존재였던 것이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013년 20대 언론매체 <고함20>에서 20대 144명 대상으로 ‘카페 선택 기준’에 대해 설문을 한 결과, 가격(54%), 접근성,(49%), 맛(48%) 에 이어 ‘콘센트와 와이파이 유무’(46%) 또한 중대한 선택 기준이었다고 한다. ‘접근성’과 ‘맛’요소와 퍼센티지 비율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콘센트와 와이파이의 유무는 나를 포함한 20대의 사람들에게 카페 선택 시에 접근성, 맛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되어 버렸다. 요즘 사람들에게,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카페는 매력이 떨어진다.



일상을 지배한, 와이파이

 
이렇게, 2000년대 초중반 본격적으로 상용화 된 와이파이는 약 10년 만에 우리의 삶을 잠식해버렸다. 핸드폰은 물론이요, 우리가 보는 IPTV또한 와이파이 기반, 요즘은 심지어 와이파이 기능을 통해 인터넷으로 사진을 즉석에서 전송할 수 있는 카메라까지 나왔단다. 어떻게 와이파이는 우리를 잠식시킨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와이파이의 연결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유선인터넷만 가능했던 시절에는 정말 연결 선이 있는(有) 곳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선인터넷, 즉 와이파이는 우리를 도처에 연결시켜준다. 가깝게는 나의 가족, 지인들과 소소하게 연락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부터, 넷 상에 존재 하는 많은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와이파이를 매개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네이버에, 다음에, 카카오톡에,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나’라는 존재는 여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이파이를 통해 여기 저기 존재하는 ‘나’의 존재를 입증시키기 위해 나는 분주하고 가빠진다.



와이파이 없이, 일상을 여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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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http://www.peoplepower21.org/notice/1329626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와이파이 기능을 잠시 내려놓고,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설정한 채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겨 보았다. 인터넷으로 매개된 ‘나’가 아닌, 방에 존재하는 ‘나’가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들. 사실 별거 없었다. 드립 커피 한 팩을 꺼내서 타 먹고, 좋아하는 노래 위주로 재생을 하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햇살을 느끼는 그런 일들. 그리고 다이어리를 펼쳐 그날 그 기분에, 그 때 재생되는 그 노래에 따른 감성으로 일기를 쓰는 그런 일들. 정말 별거 없는 일이지만 그 동안 와이파이라는 존재가 주는 편리함에 묻혀 잊고 있던, ‘나’자신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이다.

흔히들 여행에 가면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언제 다시 볼지 몰라’라는 마음으로 두 눈에 꼭 담고, 두 귀로 듣고 느끼려 한다. 와이파이의 존재를 최소화하면서 말이다. 일상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와이파이, 무선인터넷이 주는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으면 생각보다 즐길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일상을 여행처럼,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나 자신이 여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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