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이런 텃세라면 얼마든지
글 입력 2017.03.1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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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었나,
오랜만에 전화를 건 친구와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
문득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다.

초반에는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로
바쁜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주제가 취직으로 옮겨갔고

일명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주인공인
국문학도와 영문학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가 농담삼아
서른살까지는 워킹홀리데이를 다니면서 버티다가
서른 살 이후엔 모은 돈을 가지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동업을 하고 워홀 경험으로 강연을 하러 다니자
뭐 이런 실없는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침대에 앉아서 그런 소리를 시시덕 대고 있을 때,
문득 책상을 돌아보니 이 책이 있었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저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아직 제주를
꿈과 낭만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분명 제주에도 마주해야 할 현실이 있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또 그걸 간과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그런곳이 아니야.jpg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제주에 대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그러니까, '꿈과 환상의 섬'이라던가 '섬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관광지'라던가 '휴식의 섬'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들을 뒤로하고 제주 토박이로서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상을 살아왔던 작가가 보다 더 가까운 제주를  소개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전반에서 파괴되어 가는 아름다운 제주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과 외지인들이 조금 더 깊게 제주에 다가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쭉 느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약간의 텃세를 부린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워낙에 공간에 예민한 나라서 그 마음이 백배 천배 이해되었다.

  책 속에서는 제주 곳곳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목소리가 느껴진다. 제주 산담, 올레, 방사탑, 산사 등 오래전 부터 제주에서 토박이들과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이, 관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상에 대한 깊은 고찰없이 파괴되고 사라지고, 외지인에 의해 마구잡이로 과잉 소비되는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그가 마음이 편했을까. 이 책은 그런 염려와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제주를, 환상 속 이미지가 아닌 진짜 제주를 마주하면서 제주라는 단어 자체에 그리고 그 섬 자체에 깊은 고찰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문득 문득 느껴지는 불퉁한 문체도 오히려 기분좋은 츤데레 가이드의 나름대로 친절한 설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썩은 섬이나, 자갈 해변, 산사, 생태하천 등 몇몇 곳은 이 책을 들고 직접 찾아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부라는 점, 일상의 연장 속에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제주에 가면 아무래도 SNS나 블로그 후기에 따라 관광지를 위주로 둘러보게 되는데, 주로 그런 여행들을 했던 나에게 이 공간들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 당장은 갈 수 없지만, 언젠가 일상 속에서 방문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곳들을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제주도는 중국인들의 단체관광이 금지되어 한산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더불어 "중국인 없는 한국에 놀러오세요"라는 광고 문구도 우스갯소리로 (혹은 진지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메세지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우리('우리'는 늘 모두를 대변하지는 못하는 명사다) 한국인들의 눈에 일부 중국 관광객들의 무책임한 행동들이 눈엣가시였다는 사실의 반증일텐데, 여기서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큰 단위, 그러니까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텃세를 부리는 우리가, 과연 작은 단위에서도 같은 행동을 할까하는 그런 의문.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제주를 방문하면서 한 번이라도 제주를 제대로 느꼈을까라는 그런 의문 말이다. 약간은 핀트가 어긋난 비유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아직 제주가 낯설다. 나에게 제주는 여전히 관광지이고 현실을 마주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이나 많이 벌어서 제주에서 게스트 하우스나 하자는 실없는 소리를 했겠지. 이처럼 이 책을 읽었더라도 나에게 아직 제주의 이미지는 그렇다. 많이 바뀌지도 않았고 그저 '이런 면이 있구나' 정도를 인식한 것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 더 더욱 작가와 같은 제주인들의 텃세가 심해져야한다. 파괴되어가는 제주의 전통, 환경에 대한 염려와 진짜 제주를 보여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말이다. 이런 텃세라면 나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진짜 제주를 더더욱 알고 싶은 밤이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밀려온다. 
산만한 파도가 해안을 덮친 뒤 바다로 되돌아가면서 자갈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빠진다. 
"차르르, 차르르"하는 그 소리를 들어보라. 

      -p.93 냅둬요, 지금 이대로 中에서 


언젠가 나 역시 "제주는 그런곳이 아니야!"라고 말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제주를 더욱 알고 싶은 밤에 쓰는 짧은 감상.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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