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침묵 속에서 생의 보편성을 보았고 그것들은 나의 또다른 이름들이었다 [문학]

조용미 시집 - 나의 다른 이름들
글 입력 2017.03.18 17: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좋은 책을 마주하는 일이란 사실 어렵다. 일주일동안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베스트셀러 또한 매주 바뀐다. 간혹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들이 그래도 좋은 책일거란 생각을 한다. 좋은 책이기에 많이 팔릴수도 있다. 그러나 많이 팔렸다고 해서 꼭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할 때 여러 장르를 한꺼번에 보는것보다 한 장르를 꾸준히 파는 성격이다. 지난 해 여름까지는 에세이에 빠져있었는데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부터는 시집에 꽂혔다. 생각해보면 나는 소설보다도 시를 좋아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시를 배울때 재미를 느꼈다. 예쁜색의 여러개의 펜들로 신중하게 밑줄을 긋고 그 뜻을 적어놓았다. 대조되는 것들끼리 도형으로 묶어도 보고 한참을 해석하고 난 후 밋밋했던 교과서의 시가 알록달록하게 물들어있는 것을 볼때면 뿌듯했다. 그 시절 시는 내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예쁜 글자였다.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되가면서 더 큰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난 후 접한 시는 굳이 밑줄을 그어가며 해석하지 않아도 마음 속 깊이 와닿는 것들이 많았다. 한 동안 시집을 꾸준히 읽다가 뜸했던 시기에 접한 시집이 있다. 시집이라기엔 다소 두껍고 산문집이라기엔 조금 얇은. 자주 가던 카페 책장을 훑어보다 만났다. 조금만 읽고 다른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첫장을 여는 순간 나는 속절없이 그 시 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뛰어내릴 수 있는
나비 같은 가벼움이 우리에겐 부족하다

아름답고 허황된 약속들은
그러나 오로라의 빛처럼 분명하다
계절을 비와 바람을 앞세우고 나를 들쑤신다


- p.28 가수면의 여름 中



어느 샌가 나는 무거움으로 짓눌린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를 보낸다는 말보다 버틴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삶을.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청년들의 어깨는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벼움을 위장한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가볍게 흘러나온 시시콜콜한 농담의 음율 속에 한숨이 섞여 나온다. 스스로 혹은 누군가와 밥 한번 먹자는 가벼운 약속들 또한 나를 피곤하게 하는 요소들로 바뀌어 버린다.

가벼움을 가벼움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이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 넘어야 할 장벽들이 많아서 그런걸까. 이상이 섞인 약속이나 문장들을 굳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많은 것들이 계절이란 이름을 앞세워 내게 온다. 그냥 와도 벅찬 것들이 굳이 비바람을 동반하여 내 마음 위로 세차게 퍼붓는다.

우리에겐 그것들이 주는 아픔을 이겨보려는 반발심에 더 따가운 들쑤심을 당하는 걸지도 모른다. 가끔은 비바람이 주는 아픔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그 비의 냄새, 바람의 결, 그것들에 실려온 것들을 느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가벼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또한 가져본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부들부들하게 흘러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명왕성에서도 몇 광년을 더 가야 하는
우주의 멀고 먼 공간,
아무도 가 보지 못한
태양계의 가장자리,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난 거기서부터 고독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다.


- p.40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中



이 구절을 읽을 때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누구나 생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순간까지 고독과 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독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람으로 존재 하기 전 우주에서 유형 혹은 무형의 존재일 때 우리는 처음으로 습득하는 것리 바로 고독이란 것이다.  태양계에서 너무 멀고 작아서 빠져버린 명왕성보다도 더 먼 곳에서 생겨난 나는 고독 그 자체 였으리라.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리고 감히 다른 행성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들이 존재하는 지구와는 몇천광년이나 떨어진 암흑의 공간에서 외로이 존재한다. 소리도 없고 나 또한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 있다면 아무리 밝게 빛나는 별이라고한들 어찌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몸 속에 고독만이 가득차 몸 밖으로 고독이 흘러나올 때 즈음 우리는 사람이 될 준비를 마치게 된다. 하나의 혜성이 되어 지구로 향할 때 우리는 또다른 감정들을 습득하게 된다. 긴장, 설렘, 초조함, 실망, 환희 등 다양한 감정들이 버무러져 점점 더 가속도를 붙이며 날아간다. 마침내 습기를 머금은 대지가 보일 때 즈음 우리는 스스로를 태워 조심스레 땅을 밟아본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까지 열달동안의 항해는 결코 짧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경이로운 긴 시간일 것이다.  이미 몸 속에서 잠재되어있던 감정들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는 것이다.


1.jpg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시인의 고유한 시적감정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시집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자연과 우주와의 관계에서 삶의 보편성을 발견해낸다. 또 스스로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삶의 본질 혹은 생의 심연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탐구한다. 사실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사소하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에서 거창한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낸 뉴턴처럼.

조용미 시인의 시들은 다소 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감동와 전달력은 시임에 틀림없다. 정적이고 고요한 느낌의 시는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짙은 슬픔이 전반적으로 난무하는 나의 삶을 위로해준다.  침묵과 고독함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져있는 무질서한 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또한 나로 존재하게 되는 다른 이름들이다.  나의 다른 이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강태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