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 『연애;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 [문학]

글 입력 2017.03.1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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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적인 것을 정확하게 정답 지을 수는 없다. 특히나 “사랑”은 더욱 그렇다. 개개인의 입술 모양이 모두 다른 것처럼 “사랑”의 모습도 다르다. 그것은 때로 괴이하고, 순수하며 뜨겁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연애를 다룬 수필은 누군 가에게는 정확한 지침이 되기도 하고, 누군 가에게는 조금도 맞지 않는 틈을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내게 박현민 작가의 『연애;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은 전자와 후자를 오가는 중간에 서있다.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고개를 젓는 부분 역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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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지음 | 펴낸곳 나무발전소 | 공동기획제작 (사)빅이슈코리아  


 생각하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어느 부분을 읽을 때면 밑줄을 치며 읽을 것이고, 반면에 어느 부분을 읽을 땐 혀를 차기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문제집이 아닌 책인 이상 정답이란 건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 책의 장점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작가는 책으로 하여금 독자를 다그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여지를 남겨두는 문체는 독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자유롭고 편하다.


“자, 모두 잃고 함께 울어보아요”_본문 35p


 평범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문장은 때로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 깊이 각인된다. “꽂힌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되는 셈이다. 특히나 나에게 이런 꽂히는 문장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나의 경우 좋은 책을 선별하는 기준이 바로 “꽂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책의 내용이 엉망이어도 꽂히는 문장이 있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라고 분류한다. 반면에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꽂히는 문장이 없으면 그 책은 나에게 매력 없는 책이 되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봄, 썸」 편에 나오는 한 여성의 진술은 나와 놀랍도록 같은 증언이다. 30대 중반이라고 소개된 그녀는 만나보고 싶은 애인의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 이성을 만날 때 이런 상상을 해요.
‘내가 이 사람과 키스할 수 있을까?’
 ‘키스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면
사귈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예요.
 서로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 맞닿는 키스를
좋아하는 감정 없이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요.”_본문 20p

 
 나는 그녀의 말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동의한다. 나 역시 “썸”을 탈 때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이 사람과 키스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커트라인만 넘으면 연인으로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커트라인이 워낙 제멋대로인지라 나 조차도 가늠할 수 없어 모호하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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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몇 글자로 완성된 연애 칼럼 따위가
사실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모두들 이미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연애 칼럼을
이토록 집중해 읽는 이유는 뭘까?”_본문 109p

 
 아 세상에.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창피하게도 카페에서 빵- 터져버렸다. 만약 전지적 시점인 누군가가 이 상황을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분명 이리 기술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의심에 대해 답한 듯한 문장을 보고 크게 웃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문장을 다시 반복했다.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서 그녀는 책에게 묻고 싶어졌다. 연애 수필이, 이리 솔직하게 증언해도 되냐고.

 이제 대미를 장식하고자 아껴두었던 부분을 말해볼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고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부분에 나와 같이 감명할 지도 모른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확신한다. 이 부분만큼은 한쪽으로 쏠린 공감이 될 것이라고.


 “쿨한 이별은 개나 줘라”_본문 162p


 맞다. 세상에 쿨한 이별이란 건 없다. 이별에 쿨함을 운운할 수 있는 사람은 대게 이미 이별을 준비한 사람이거나, 다른 연인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거나, 진짜 나쁜 X거나 셋 중 하나다. 내 지인 중에도 쿨한 이별을 운운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별에 승복하지 못하고 붙잡는 연인들을 혐오했다. 참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지인으로서 그의 수많은 연애사를 지켜본 증인이었다.

 하루는 그에게 이별을 선고 받은 그의 지난 연인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별에 대한 사과와 진심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한참이나 그의 전 연인과 실랑이를 하다 결국 사과했다. 물론 거기에 진심은 조금도 없었다. 그의 지난 연인은 그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했고 서늘한 저주를 내렸다.

 -당신도 당신이랑 똑 같은 사람 만나봐!

 그 말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건 겨우 두 달 정도가 지난 여름이었다. 그의 카톡 프로필은 또다시 연애의 기운으로 가득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연인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절대로 만나는 연인의 얼굴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차라리 직접 소개를 해줬으면 해줬지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프로필에는 올리지 않았다. 조금 놀랐지만 그러려니 했다. 워낙 사랑꾼에 패스트 러버인 그였으니 금방 사진의 주인공이 바뀌겠구나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프로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바뀌지 않았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그에게 딱 맞는 상대라며, 대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는 놀라울 만큼 변했으며 우리는 그의 연애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역시 사랑의 힘은 대단해. 아마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인들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 번의 계절이 흘렀을 무렵 그의 연애사가 잠잠해져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 그는 이별을 통보 받았다. 이별한 그는 폐인이었고, 그가 말했던 “구질구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취해 전화했고, 직접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가 용서를 빌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의 쿨하지 못한 이별은 3주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쿨한 이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직접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에 쿨한 이별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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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만남과 이별을 계절로 분리해 좀 더 쉽고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쉼이란 없다. 즉, 책은 아주 쉽게 읽히고 지루하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빨리 소비되고 빨리 잊히지만 동시에 영원 불변하는 것을 바라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원불변은 어쩌면 사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싶을 때,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때 이 책을 추천한다. 모두에게 이번 봄에는 사랑의 날들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아, 물론 나에게도 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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