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인의 고통 앞에서 법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묻게 되는 [공연예술]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카프카의 소송>을 보고
글 입력 2017.03.1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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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휴먼 코메디>나 <보이첵> 등의 작품으로 탁월한 ‘움직임’을 선보여 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이하 사움연)를 아실 겁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지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국내선정작으로 올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초연 때 받았던 감동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터라, SPAF 때 놓쳤던 아쉬움을 이번 재공연 덕에 더 큰 감동으로 채워왔습니다.

제가 사움연의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탁월한 표현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도 ‘사움연다운’ 향취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 카메라를 들이대 사진을 찍어도 좋을 만큼 매장면마다 ‘그림’이 빼어납니다. 극이 진행되는 순간마다 눈으로 사진을 찍듯 한 컷 한 컷 담게 됩니다.
배우들의 몸 씀씀이를 보면 훈련된 몸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임은 물론이고 빠르거나 느린 템포를 완숙하게 표현해내며, 배우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인물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자체에 배경처럼 움직이며 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아주 탁월합니다. 배우도 연출도 연구를 많이 한 작품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연기와 연출 이외에도 압축적이고 가변적인 무대- 특히 다양한 설정으로 쓰이는 사움연의 대표 오브제인 의자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의자 이상의 것들로 변주됩니다. 심플하게 디자인된 의자는 장면마다 집안의 의자, 사무실의 의자 등 개개의 역할을 갖는 것은 물론, 여러 개의 의자들을 조합해 판사의 책상이나 디자이너의 공간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소송을 위해 줄 서는 사람들에게 길이며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조명은 무대 사방을 둘러 길을 열어주는 듯한 길고 각진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법이라는 무형의 개념에 대해 요제프가 거대한 벽이라도 만난 듯한 장면에선 한껏 위압감을 돋우는 데 한몫합니다. 무대와 조명뿐 아니라 장면마다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함과 발랄함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음향도 칭찬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공연의 모든 요소요소가 탁월합니다. 그럼에도 과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에선 과감히 압축되고, 어떤 장면에선 강하게 에너지를 뿜는,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조화로운 생략과 강조로 촘촘히 진행되는 장면들은 관객의 호흡마저 들었다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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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adarimovementlab/posts/1372732609453616 )


찬사가 길었습니다. ^^; 물론 더한 칭찬도 아깝지 않은 공연입니다만, 내용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프카의 소송>에서는 카프카 특유의 극적 전개가 있습니다. 주인공 요제프 케이는 어느날 아침 갑자기 ‘소송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소송인지, 소송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극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소송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요제프는 소송의 해결을 위해 판사의 비서와도 통정하고,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자신의 변호사에게 한밤중에도 찾아갑니다. 5년 째 소송 중이라는 블로크란 자는 ‘납작 기는 법’에 대해 과외라도 시켜줄 기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송에서 결백을 호소하고 이기려 한다기보다 어떻게든 패하지 않고 지연전술을 쓰며 잘 버티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제프 역시 판사와 친하다는 디자이너를 찾아가 내키지 않지만 예, 예 대답하며 옷을 수없이 껴입기도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사실 간단합니다. 소송을 당하면 괴롭다, 법은 개인을 위해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움연이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서부터 재구성한 연극 <카프카의 소송>은 카프카적 분위기를 강렬한 연극적 인상으로 치환했습니다. 연극의 가장 큰 특성은 ‘현장성’입니다. 관객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요제프의 괴로움에 강하게 공감합니다.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조차 왜곡되게 받아들일 만큼 일상이 온통 망가지는 요제프의 처절함을 목도하며,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끝없이 자문하게 됩니다.
큰 사고나 사건을 겪지 않는 이상 보통의 사람들이 평소 일상에서 ‘법을 체감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끽해야 신호위반이나 쓰레기 배출 정도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소송 그거 뭔지는 몰라도 정말 괴로운 건가 보다-까지는 쉽게 닿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을 보며 ‘손배가압류’를 떠올렸습니다. 단어마저 생소한 분들도 많을 겁니다. 글자 그대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합쳐서 이르는 단어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물리는 겁니다. 공장이나 설비가 망가진다던지, 경찰 진압 비용이라던지, 파업 기간 동안 회사 입장에서 생산 차질로 손해를 봤다던지 하는 이유 등으로 그 비용을 파업했던 노동자들에게 전가합니다. 대체로 길고 지난한 '소송'의 시작입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헌법에 보장하는 노동권을 침해합니다. 노동은 권리입니다. 하지만 사용자 마음대로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해도 소송이 두려워 나의 ‘일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게 됩니다. 둘째, 부당한 해고를 당하더라도 소송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됩니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당할 여지가 많습니다. 셋째, 해고도 손배소송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인데, 오롯이 노동자 개인에게 지워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납득할 수 없는 해고를 당해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상여금·퇴직금 가압류는 물론이고, 집과 자동차, 통장까지 압류합니다. 순식간에 억 단위의 빚이 생기고, 노동자 본인뿐 아니라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어린 자녀와 아이를 두고 자살한 분들도 여럿입니다.

관련 법률의 빈틈과 파업조차 쉽지 않은 한국의 노동문화 속에서는, 사실상 기업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주는 셈입니다. 누구든 파업을 하려 한다면 확실하게 '응징'할 수 있습니다. OECD 어떤 국가도 한국처럼 쉽게 해고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소송을 마구 걸진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기업이라는 ‘시스템’과 노동자 ‘개인’ 간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에 비할 게 아닙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웹페이지)


연극 <카프카의 소송>을 보며 ‘소송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의 이미지로부터 손배가압류가 떠올랐다면, 종국에는 ‘법이 왜 있나’, '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까지 가닿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법’의 존재 이유는 ‘분쟁 해결’일 텐데,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법이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는 듯합니다. 가진자들 편을 들거나, 법을 다룰 줄 아는 자들이 끼리끼리 ‘독식’합니다. 법관이나 변호사의 권위적 태도, 내키지 않지만 ‘높으신 분들에게’ 줄을 댈 수 있다는 디자이너에게 머리숙여 인사하고 부탁해야 되는 요제프의 상황, 탄원서나 진정서 제출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도 반영될까말까 하는 수준이라고 낙담하게 만드는 블로크의 경험담 등.

한국에서도 법은 일종의 권력이고 카르텔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 흘리지 않고’ ‘법치대로’ 대통령을 탄핵·파면한 긍지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결국 ‘법’이라는 질서이자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공동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쓸 것인지 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복잡한 생각까지 하지 않더라도 <카프카의 소송>은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공연입니다. 곧 마지막 공연이네요. 훌륭한 작품을 만나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거의 매진이던데 티켓을 놓치지 않는 행운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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