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라이트, '진짜 나'를 마주 보는 방법 [시각예술]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글 입력 2017.03.1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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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그 노랫말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원곡은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에 나온 노래라고 한다. 어느덧 서른 살을 맞은 이 노래가 많은 가수들의 입에서 입으로 리메이크되어 스무 살인 나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마도 가사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절절해지는 순간이 우리에게는 늘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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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쌓는 시기다. 3월은 그런 달이다. 그래서 과도하고 이상하게 들떠 있고, 과도하게 괴롭기도 하다. 내가 매년 이 시기마다 느끼는 감정은, 앞에서 언급한 저 한 소절이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순간들마다 '이런 건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모습들은 각자 너무 다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도 많고 아주 상냥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무뚝뚝하고 별로 웃지도 않는 아웃사이더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래서 3월은 치열하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자신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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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탈이 많았던 오스카의 주인공, 문라이트를 한 달에 걸쳐 세 번 봤다. 이 영화를 본 시기와 새 학기가 겹친 건 순전한 우연이겠으나, 그 우연을 어떤 필연처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는 게 사람이니까. 나는 나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이 영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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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이라는 단어만큼 가혹하고 어려운 말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나는 아주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이지만, 내게 폭력적인 부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샤이론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렇게도 어렵다. 어쩌면 내가 아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후에도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스스로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전까지 믿어왔던 것들을 모두 버려야만 하는 시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건 얼마나 무서운 상상인가. 떠올려 보면 나는 계속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여전히 무섭다. 우리 모두가 낯섦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정체성을 알게 만들어 주는 건 결국 어떤 관계들이다. 남과 부딪치고,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이 나온다. 그걸 발견해 주는 이를 만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겠고. 영화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결국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샤이론은 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늘 그 답을 내리지 못해 벼랑에 몰리고, 때로는 거짓말로 대답해 타인을,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그리고, 미워하고 사랑했던 관계들 속에서 그 답을 찾는다. 너무 늦은 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중에 그 모습이 진짜 자신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리틀에서 샤이론, 마침내 블랙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을 몸으로 느꼈다. 진실한 자신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그걸 깨닫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치고, 그렇게 멀리 돌아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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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문라이트는 퀴어 서사이지만 퀴에에게만 읽히는 서사는 아니다. 치열한 성장담이며 아름다운 멜로이다. 당신은 당신 안에 있지만, 그 모습을 거울 안에 비춰진 상처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끝없이 가닿아야만 한다.





※ 모든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임을 밝힙니다.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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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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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실
    • 성소수자이자 유색인종, 마약중독의 엄마를 둔 샤이론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준 마약상 블루와 사랑을 알게 해준 케빈을 늘 잊지 않았던 것.. 결국 사랑이 자존감을 일깨워주고 자존감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 영화를 보고난 후의 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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