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시각예술]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글 입력 2017.03.1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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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다는 게 뭘까?

아델.jpg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길에서 스칠 때,
우연히 부딪친 사람과
 저절로 시선이 오갈 때,
한눈에 반했을 때처럼.
가슴엔 뭔가 채워질까? 빠질까?”


 고등학교 문학시간, 아델이 좋아하는 ‘영감을 주는 선생님’이 던진 질문이었다. 수업을 마치면서 선생님은 운명적인 인연, 예를 들면 한눈에 반하는 사랑 같은 것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했고, 그날 아델은 가슴속에 무언가 채워지는(어쩌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 혹은 인연

길에서 마주친 엠마.jpg
 

 아델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남자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파란 머리의 엠마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아델은 계속 엠마를 떠올리게 되고, 게이인 친구 발렌틴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척하는 자신이 가짜 같다며 하소연한다. 고민 끝에 결국 아델은 잠자리까지 가졌던 남자 선배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완전히 다른 둘, 그러나 하나.

아델과엠마-축제.jpg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아델은 게이바에서 엠마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하지만 둘은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이었다. 엠마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실제로 하면서 사는 삶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엠마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아델의 눈동자는 답답할정도로 불안으로 가득 차있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 앞에서 그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대학을 가지 않고 빨리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도 불안정한 것을 두려워하는 아델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행복의 방식이 다른 걸까

 둘의 뜨거웠던 연애도 차츰 적정 온도를 찾아갔다. 아델은 졸업 후에 보조교사로 일하게 됐고, 엠마는 아델을 모델로 한 작품을 전시한다. 엠마는 아델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엠마의 눈에는 아델의 끝없는 불안함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이야기하는 장면.png


“난 그저 너도 뭔가를 이뤘으면 좋겠어서.”
“뭘?”
“자아실현 말이야.”
“난 만족해.”
“날 위해 요리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행복하길 원해.”
“난 행복해. 이렇게 너랑 있는 게 내 행복의 방식이야.”


싸우는 장면.png


 실제로 아델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엠마가 점점 자신의 일로 바빠지자 아델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 동료와 의미 없는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아델은 아마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어서 외로웠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아델은 자신을 엠마라는 존재로 채우는 것에 익숙했고 그걸로 행복하다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엠마는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고 돌아온 것을 안 엠마는 아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나가라고 소리친다.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헤어진 후의 아델에게는 점점 더 진한 파란색이 남기 시작한다. 아델은 여전히 엠마가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리움과 후회로 괴로워한다.


재회.png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엠마와 아델은 모두 파란색의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두 파란색의 의미는 달랐던걸까. 엠마는 아델을 용서했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엠마가 아델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한한 애틋함'이었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엠마를 보내고 혼자 남은 아델의 모습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엔딩.png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엠마는 자신의 전시회에 아델을 초대했고, 아델은 진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전시회에 나타난다. 반면, 이제 엠마의 모습 어디에서도 파란색은 찾을 수 없었다. 엠마의 작품을 보면, 과거의 자신을 파란색으로 표현했지만, 현재는 빨간색으로써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엠마에게서 파란색은 완전히 빠져나간 듯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델은 파란색으로 휩싸인 채 멀어져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스스로 더 큰 상처를 받은 아델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결말이었다면, 아델의 눈동자에 서려있는 어딘지 모를 불안함이 사라졌다면 엔딩을 맞이하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을까. 어느 샌가 나도 아델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꼈나보다. 멀어지는 아델의 뒷모습에 대고 파란색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기를 조심히 바랐다.



#영화 전반

 영화는 동성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둘의 사랑은 지극히 평범해보였고 그래서 더 깊이 와 닿았다.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었던 3시간 동안 아델과 엠마는 그들 자체로서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가씨〉를 보고 배우들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블루는 더더욱 그랬다.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장면이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상태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아델의 살짝 벌어진 입술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계속해서 뭔가를 갈망하는 듯한 모습은 매력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케시시 감독이 추구했던 극도로 사실적인 것이 주는 ‘심미안적 아름다움’을 영화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를 보고나서의 충격 때문인지 프랑스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았는데, 이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영화였기에, 온종일 ‘I Follow Rivers'를 틀어놓고 쉽게 가시지 않는 블루의 여운을 느끼고 있다.


[김현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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