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사랑, 나의 혈육-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시각예술]

꿈으로 가득찬 인생의 마지막
글 입력 2017.03.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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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싱. 두 사람이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상대편 허리 벨트 위의 상체를 쳐서 승부를 겨루는 경기. 즉, 자신의 주먹만을 믿고 경기장에 뛰어들어 상대방의 얼굴과 몸을 직접적으로 가격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스포츠이다.
 
 여성복서의 성장기를 주요 플롯으로 삼은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주인공 매기는 32살에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권투 트레이너인 프랭키는 여자라는 이유로, 나이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그녀의 열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키웠지만 결국에는 배신해버린 다른 선수에 대한 복수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묵묵히 밤늦도록 혼자 연습하는 그녀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매기의 복싱에서는 나이와 성별은 상관이 없었다. 낮에 서빙을 하면서 남은 음식을 챙겨와 식사를 해결하고 번 돈은 모두 체육관에 사용하던 매기에게 복싱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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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신부터 보호하라”


 매기는 프랭키의 절제된 트레이닝과 그녀의 노력이 결합되어 한 방에 선수를 쓰러뜨려버리는 챔피언이 되었고, 그녀의 인기와 위상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나 프랭키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선수 시절에 무리한 경기로 한 쪽 눈을 잃고 은퇴하게 된 친구 스크랩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던 그는 매기의 부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몸보다 경기의 승리를 중요시하는 매기의 부상을 보며 프랭키는 자신의 딸과 그의 친구 스크랩을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이고 그의 무표정 속에는 걱정이 가득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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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키는 영화 초반에 절대 일반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미간에는 항상 주름이 새겨져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친절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말투가 거칠다고 해서 그의 마음조차 차갑다는 뜻은 아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프랭키는 그것을 살갑게 표현하지 않으며 오히려 채찍질을 하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랬던 사람이 매기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 매기와 함께 활짝 웃기도 하고 격하게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그녀의 부상을 보며 걱정을 감추려 도리어 화를 내는 프랭키는 극의 초반과는 매우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매기와 프랭키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돈벌이로만 생각하고 결코 아껴주지 않는 가족들을 가진 매기, 그리고 프랭키는 매주 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항상 반송이 올 정도로 딸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가족과 먼 거리를 두고 있고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 공통점은 그들의 차이를 완화해주었고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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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의 조명은 자주 인물의 얼굴을 가린다. 체육관에서 스크랩이 매기의 열정을 발견한 날, 프랭키가 매기의 트레이너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날. 두 사람이 등장할 때는 얼굴 전체가 드러나지 않고 턱만 드러나면서 서서히 얼굴이 드러나는 조명 변화를 준다. 또한 인물이 선택의 기로에 놓여 고민을 하는 장면에는 어둠 속에서 얼굴의 반쪽만이 드러나곤 한다. 특히 마지막 프랭키와 스크랩의 대화는 얼굴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깜깜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어둠은 그들의 고민이나 근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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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 등이 형성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그 중 가장 우선순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가족이 미운 사람들에게 같은 핏줄이라는 것은 족쇄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프랭키와 매기가 그러했다. 매기는 프랭키에게 사랑이자 그의 혈육이었다. 아니, 혈육보다 더 중요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매기가 가족을 위해 안락한 집을 샀지만 오히려 원망을 하던 그녀의 가족보다, 프랭키와 연을 끊고자 하는 그의 딸보다 더욱 더. 모쿠슈라.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을 의미하는 아일랜드어를 프랭키는 매기에게 별명으로 지어준다. 그리고 매기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 단어를 속삭여준다. 그는 매기를 결코 타인으로 정의해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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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기가 프랭키와 드라이브를 하던 도중 자신의 어릴 적 일화를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키웠던 강아지가 발을 다쳐서 곤란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산에 데리고 올라갔지만 같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일화.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직접적으로 부탁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상기시켜준다. 관객들은 강아지 얘기를 다시 꺼내던 매기의 얼굴을 보며 그 의미를 암묵적으로 공유하게 된다.

 
 전 제가 원하는 걸 얻었어요.
전부 얻었어요.
내게서 이 모든 걸 가져가지 말아줘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못 할 때까지
누워있게 하지 말아줘요.

-매기 피츠제랄드
 

 “난 정말 행복했다.”라고 말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산 것이 분명하다. 매기는 그런 삶을 살았다. 비록 짧은 인생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선택을 누구도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프랭키의 선택도 함부로 비판 할 수 없다. ‘안락사’라는 의미가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니고 당사자의 의사가 확고하다면, 다른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은 결코 쉽게 나온 것이 아니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상을 받으며 이미 인정을 받았었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절대 관객들에게 억지로 감동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매기의 복싱인생을 스토리텔링하면서 그녀의 선택과 프랭키의 마음을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면서 눈물을 자아낸다. 아직도 스틸 컷들을 보면 울컥해지는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비록 옛 작품이지만 인간관계에 소외감을 느끼는 현대의 사람들, 인생의 행복 및 목표에 대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해답의 길을 제시해줄 영화임에 틀림없다.




 


[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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