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에서 ‘다름’ 으로 살아간다는 것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3.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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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단일국가로써 살아왔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는 ‘하나’라는 민족적 자긍심과 뜨거운 애국심을 주었으나, ‘다름’에 대한 견해의 함양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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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타인과 마주하기도 하고 어떤 무리 속의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과 함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기 힘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차별이 팽배한 부당사회 속에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편견은 고정관념이자 살아온 가치관이기에 누구나 갖는 것이고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나 편견을 가장한 오만과 차별은 결코 누구도 행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며 매우 비겁한 행위이다. '다름’에 대한 끝없는 차별은 현재까지 끝없이 인류를 옥죄이며, 퇴보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 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여대생 A씨는 현재 미국인의 흑인 남자친구와 교제중이다. A씨는 교제사실을 타인에게 알리는 게 조심 스럽다고 한다. 그녀가 외국인과 교제를 밝힌 순간, 전과는 확연히 다른 극명한 시선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흑인을 사귄다고 하면 농담을 빙자한 성적인 질문들을 받는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일화로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느 날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대중교통 이용할 때, 사람들은 왜 자신의 옆자리에 앉지 않는 것 인지에 대한 질문 이었다. A씨는 남자친구에게 아무런 답도 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A씨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보통 남들과 다르지 않은 연애하고 인종을 떠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녀는 자신의 연애가 나쁜 의미로 특별한 ‘다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고 한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소위 ‘4차원’이라고 불리는 B씨는 굉장히 사색적인 성향이다. 평소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소수적인 일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대중적인영화보다 예술이나 독립영화 장르를 선호하며, 때로 그는 그만의 독특한 발상으로 호기 적으로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는 이런 유연한 사고로써 다양한 폭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고 다양한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매력을 지녔지만 그는 종종 이런 성향의 그를 무시를 하거나 웃음거리의 대상화로 전략시켜버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도 잦아 속상할 때가 많다고 한다.

직장인 C씨는 신입막내의 꼬리표를 뗀지 1년 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느낀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적당히 잘 숨기고 상사에 복종하는 것 이다. 그가 신입 막내시절, C 씨의 직장동료 K씨가 야근이 너무 잦고 터무니없이 일이 늦어지는 것에 대하여 참다 참다가 조심스럽게 항의를 하였다고한다. 그 다음날부터 그 K씨는 암묵적으로 사내 따돌림을 당하였다. 결국 K씨는 몇 개월을 버티다가 회사를 나가는 방향을 택하였다. 직장인 C씨는 이런 관경을 실로 가까이 보았던 지라 직장 내에서 자신의 발언을 하는 것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위해서 금기사항이라고 조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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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D씨는 요즘 미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한다. 치마는 남들처럼 짧아야 하고 체육복 바지통과 밑단은 줄여 발목이 살짝 보이면서도 날씬해 보여야한다고 한다. 또한 노란피부가 콤플렉스라 피부를 하얘 보이기 위해 밝은 미백 색조화장품을 애용하며, 나중에 성인이 되면 눈은크게 코는 높게 턱은 갸름하게 성형을 할 것이라고 밥 먹듯이 이야기 하곤 한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도 높다. 학업에 열중 해야 할 그녀가 그토록 병적으로 미를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그녀는 학교에서 외적으로 나름 괜찮게 하고 가야 무시를 당하지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무리에서 외적으로 유행화되는 것어 쫒으지 않으면 묘하게 도태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학업 외에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일화들은 필자의 주변인들이 직접 겪고 이야기 해주었던 일화들이다. 필자는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그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었을지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었다. 필자도 비슷하게 겪거나 보았던 일들 이었기 때문이다.

A씨의 일화를 보면 아직도 인종차별이 팽배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 등등 편견의 잣대로 인한 차별이 느껴진다. B씨와C씨의 일화도 그러하다. 사람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관심사 개성 생각등이 모두 다르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겸손과 적은말수를 미덕으로 하여 획일화된 성격의 사람이 '선비상'이라하여 '바른 표상이'었다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본인의 개성과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등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은 아직 ‘다름’에 대한 타인 존중과 배려가 부족다고 생각한다.

D씨의 일화처럼 미에 대한 기준의 획일화도 차별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주관적으로 생각되어야 할 미의 기준이 어느 순간 대한민국에서는 객관화 되어버렸다고 여겨진다. 주관적인게 객관적으로 변모한 순간 원인모를 우월함과 자괴감을 주는 이분법적 형태로 나누어버리고 이는 곧 차별의 족쇄의 고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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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일로써 지난해 직장 내의 왕따 문제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왕따라고 하면 보통 따돌림을 당한사람의 문제가 컸을 것이라는 소수에 대한 편견을 갖지만, 최근 통계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이내에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경험한 이들이 무려 10명중 9명이었다고 한다. 이 통계는 직장 내의 따돌림이 곧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통계가 과연 따돌림을 당한 소수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가 개인보다는 조직적이고 획일적임을 추구하는 문화 풍토와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사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이런 일의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차별과 편견을 떠난 배려와 존중이 바탕이 되면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아직 이런 뿌리 깊은 족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많은 한국디자이너들이 외국에서 일을 잘하는 것으로 칭송이 자자하며,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나중에 성공하거나 남아 있는 디자이너의 수요는 현저히 적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다름’에 대한 인식이 낯설고 획일화 된 문화에 살던 그들이 ‘다름’에 익숙하고 자기표현과 강한 개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강한 외국인들에게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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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지인 중에는 이런 친구가 있다. 자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며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혀 수용과 배려 못하는 이들의 생각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개방적인 마인드의 소유자 이며, 꽤나 열린 사람이라고 항상 어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러나 그녀의 평소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그녀가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 매우 보수적인 마인드이며, 여전히 수많은 편견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많은 모순된 ‘차별’을 행하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그저 몇 번 외국을 다녀본 것에 대한 어설픈 외국문물 찬양과 더불어 모순된 우월감과 자부심의 결합으로 겉멋이 든 차별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는 필자의 지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방된 사회에 젖어 들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발전하였기에 표상적으로는 큰 변화와 발전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화적으로는 미처 선진화되지 못한 대한민국의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으로 중요한 내적가치는 선진화에 젖어 들지 못한 채 사회적문화의 보이지 않는 혹으로 남아버린 이 시점, 우리의 현 주소. 바로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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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 되고보니, 일제 강점기의 우리의 아픈 역사가 발현된 그 시점이 떠오른다.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 되어 그 아픈 역사들이 파생되었던 그떄가. 제국주의 사상의 발현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월감과 오만, 그리고 편견과 차별에서부터 오는 사상으로 부터 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식민지국가였던 역사적 아픔과 슬픔을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써, 과연 내가 제국주의 국가들과 같은 이념 사상을 갖고 행동하고 살아가지 않았는가?" 하는 한번쯤 우리를 돌아 보아야 필요성의 난제를 던져주고 싶다.

세계인권 선언의 제 1조 사항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써 행동하여야 한다.” 라는 조항이 있다. 이처럼 모든 이는 자유롭고 동등하다. 당연하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멸시받아야 이유가 전혀 존재 하지 않는다. 편견,차별등은 앞으로도 전 인류가 풀어나가야 숙제이지만 유독 그 잣대가 엄격한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편견과 차별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서경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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