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곰스크로 가는 기차 [문학]

글 입력 2017.03.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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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삶,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기차여행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옛날부터 꿈이 자주 바뀌곤 했다. 모험가에서 의사, 의사에서 경영 컨설턴트, 경영 컨설턴트에서 유치원선생님, 그리고 수많은 직업들에서 결국 예술가까지. 앞으로도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무엇이 간절해질지 모른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그런 것들 혹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간절한 것을 다룬다. 쉴 새 없이 꿈을 바꾸는 어린 시절의 변덕이 아니라, 원대하진 않지만 인생에서 한 번 꼭 이뤄보고 싶던 것, 그리고 때를 놓친 것에 대한 미련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글은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파란색은 인용한 글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곰스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것은, 내 성장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엄청나게 비싼 차표를 사느라 우리는 돈을 거의 다 써버렸다.
 
 주인공에게 ‘곰스크’라는 것은 아버지께 이어받은 환상 같은 존재이다.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 수 있을지도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곰스크로 가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시작하기도 어려운 일에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린 모든 것에서 멀어져가는군요.”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점점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이 여행은 끝이 없을지도 모르죠.”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말없이 서로 움켜쥔 손에서 어떤 감동이 일었지만 불안감도 함께 느껴졌다. 이따금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그렇게 부드럽고 붉던 입술에 경련이 이는 것을 보자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바로 그의 아내이다. 아내에겐 그 모든 것이 버겁기만 하다. 결혼식 직후 타게 된 곰스크행 기차 안에서 아내는 음식에 입도 대지 않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데 바쁘다. 모든 것이 근심스럽고 걱정스럽다가도, 잠깐 숨통을 틀 시간도 온다.


곰스크4.jpg
 
 
 다음 역에서 두 시간을 정차한다고 승무원이 말해주었을 때 나는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플랫폼에 발을 내딛자마자 아내의 얼굴엔 생생한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의 눈은 맑아졌으며 걸음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이리 와봐요.” 아내가 말했다.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첩첩산중이군!” 내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열병 같은 불꽃이 일었다.
 그때 갑자기 우리 뒤로 높아졌다가 희미해지는 슬픈 기적소리가 들렸다.
 “기차!”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려고 했다.
 “그냥 두세요.” 그녀는 속삭였다.
 “이미 늦었어요.”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주인공과 아내는 기차를 놓치고 만다. 아내는 오히려 이게 좋다는 듯, 혹은 이를 의도하기라도 한 듯 주인공을 붙잡는다. 이후 그들은 어떤 호텔에서 휑한 방을 얻어 묵게 된다. 주인공은 계속 기차를 기다리지만 기차가 항상 정착하는 역이 아니라 주인공의 여정은 계속 뒤로 미뤄진다.

 “이 차표는 무효입니다.” 그가 말했다.
 “무효라고요?”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유효기간이 지나면 탈 수 없는 차표입니다.”

 그나마 정차한 기차도 보내줄 수밖에 없던 그들은 결국 비싼 차표를 사기 위해 돈을 벌고 정착의 과정을 거친다. 아내는 옷장 등으로 방을 꾸미고, 하루 종일 일한 대신 안락의자를 받아오기도 한다. 주인공은 화를 내지만, 결국 안락의자는 방 한 곳을 차지하게 된다. 돈을 아끼고 아껴서 머슴살이를 한 끝에 기차표 두 장을 살 돈을 번 주인공은 결국 짐을 싼다.


곰스크1.jpg


 마침내 그가 차표를 건넸고, 나는 그의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30분 후에 출발합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마구 달렸다.
 “당신, 와주었군요!” 그녀가 말했다.
 “이 안락의자 옮기는 것 좀 도와줘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안락의자를 뭐에 쓴단 말이야. 중요한 건 곰스크에 가는 것이라고!”

 주인공과 아내의 갈등이 가장 심화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서로가 원해왔던 것이 다르더라도 암묵적으로 회피해 왔지만,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부분까지 다다른 것이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곳으로 도전하고 떠나려는 주인공과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원하기에 안락의자를 가지고 늘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대비된다.

 “내 걱정은 말고 혼자 가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나는 기차에 올라탔다. “그럼 안락의자와 행복하게 살아! 나는 떠날 테니.”
 “곰스크에 가면 나한테 편지 보내줄 거죠? 당신 주소라도 알고 싶어요.”
 “뭐하려고? 당신한테는 안락의자가 있잖아.”
 “그건, 아이가 태어나면 편지를 써야 하니까요!” “뭐라고?” “우리 아이 말이에요!”
 나는 문을 열어젖히고 이미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한 기차에서 승강장으로 뛰어내렸다. 기차는 내 곁을 미끄러져 점점 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주인공이 기차를 두 번째로 놓치는 장면이다. 처음은 아내 때문에, 이제는 아이 때문이었다. 곰스크에 너무 매진한 나머지, 눈에 띄게 배가 부른 아내의 임신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주인공은 허무하게 두 번째 기회를 놓치고 만다. 덕분에 주인공은 한동안 여행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임신한 상태로 장시간 기차 여행은 불가능했다. 안정된 생활과 거처, 생계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근심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아이를 위해 단순한 노동이 아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고, 교사사택으로 이사를 가면서 점점 시골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그 후 둘째가 생기면서, 그가 곰스크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물 건너가고 만다. 하지만 주인공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보고―그에게 교사 자리를 물려준―연로한 선생님은 말한다.


Seine Wille ist seine Schicksal, seine Schicksal ist seine Wille.
 그대가 원한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무슨 말일까? 기차를 탄 것도, 시골마을에서 내린 것도, 아이 때문에 달리는 기차에서 내린 것도, 정착해서 살기로 한 것도 모두 주인공의 선택이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고, 그 자신이 그 운명을 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 사람들은 많은 인생들에 수식어를 붙인다. 그것이 수입의 정도나 행복도에 따라서 평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 자신의 인생을 평가할 때는 이루고 싶던 것을 이루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나뉜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이루고 싶은 걸 이루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인생인가?

 대개 때를 놓쳤거나, 이제 마음이 없는 상황들을 ‘기차는 이미 떠났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자주 떠나기도 한다. 그 때마다 주인공은 절망하고, 마지막엔 삶의 목적을 잃은 듯 살아간다. 하지만 선생님은 성공한, 혹은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며 주인공을 위로한다. 항상 당신이 원해온대로 살았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것이다.

 때때로 스스로를 너무 가두고, 제약하기도 하면서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온 우리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것 따윈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 선택들이 아니라, 그 때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생각, 감정……. 오직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만이 인생의 가치를 정한다.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했건, 일어난 일을 통해 나는 충분히 나의 인생을 얻었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다.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순간순간이다. _안광복





Work wholly heartly, but detach from it.
최선을 다해 살되, 결과에 초연하라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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