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의 바다에서 발견한 나: 영화 '마담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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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문구이다. 때로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힘이 세다. 어떤 나쁜 기억은 기름띠가 바다를 뒤덮듯이 좋은 기억들을 다 덮어버리기도 한다. 나쁜 기억들로 오염된 기억의 바다는 현재의 삶을 위협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주인공인 폴 역시 기억의 바다가 오염되어버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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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두 살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후로 말을 잃은 채 피아노를 치며 살아간다. 함께 사는 두 이모가 바라는 대로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고 콩쿨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지겹고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얼마 없는 기억 속에서도 어머니는 늘 밝고 따뜻한 사람인 반면 아버지는 뒷모습을 주로 보여주는 무관심하고 애정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외면하는 만큼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폴은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주는 차와 마들렌을 먹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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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과거 속에서 좋은 것들만 발견한 것은 아니다.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만 존재하던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모를 똑똑히 확인했고 자신이 지금껏 쳐왔던 피아노가 부모님을 죽게 만든 원인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기억들을 되찾으면서 폴은 괴로워한다. 그런 폴에게 마담 프루스트는 말한다.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 밑으로 보내 버려.
수도꼭지를 트는 일은 네 몫이란다."


그는 나쁜 기억들로 괴로워 하면서도 과거를 바라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자신과 어머니를 사랑한 아버지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되면서 아버지를 한 명의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없이 치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우쿠렐레를 연주하게 되었다.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던 그의 상처는 그가 과거의 기억을 직면할 때 비로소 치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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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폴이 피아노를 꽃들로 꾸미고 거기에 물을 주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를 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다. 과거와 똑바로 마주하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어 미래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끔 단서를 제공한 마담 프루스트가 자칫 절대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영화는 결코 그녀를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폴의 이모에게 오해를 받아 머리를 뜯기고 공원에서 시위를 하다가 연행되고 암투병을 하기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 또한 부서지기 쉬운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마담 프루스트는 투병 끝에 죽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되찾은 폴이 그녀가 묻혀있는 곳 앞에서 우크렐레를 연주하는 장면은 마담 프루스트로부터 치유받은 이가 이제 반대로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살아온 동안 축적된 수많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기억이 분명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원래 나쁜 것들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나쁜 기억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져서 그냥 모른 척, 잊은 척 하고 살아가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계속 이어져온 나쁜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따뜻한 색감과 뮤지컬적인 요소를 이용해 폴이 어떻게 현재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지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덩달아 나까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현재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과거를 바라보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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