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NS, 글쓰기, 그리고 오글거림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3.14 14:4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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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싸이월드에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같이 방을 쓰는 언니를 비롯한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스탠드 하나 켜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은 채로 몽글몽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들을 글로 다듬어 나타내는 것은 일상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초등학교 친구부터 시작하여,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존재들은 깊은 밤 내 글감이 되곤 했다.


밤 일러스트_알라딘서재 펌 (지미 리아오 작가).jpg
이미지 출처: 지미리아오 작가 작품 _ 알라딘 서재 블로그 (http://blog.aladin.co.kr/panda78/532131)

 
하지만 곧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친구들은 내 글을 읽고 “뭐야 ㅋㅋㅋ 개 오글거려” 라고는 했다. 이후 싸이월드 다이어리는 정말 단순한 일기만을 쓰게 되었고, 노래와 함께한 내 새벽감성들은 나만 공개로 설정한 다이어리 폴더에 쓰곤 했다.
 
그러다 2012년,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과 같이 페이스북을 쓰게 되었다. 한국에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지금과 같이 많지는 않을 때라, 나는 친구들과 페이스북에서 글도 쓰고 소위 말해 ‘엽사’도 올리며 즐거운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몇 년이 흘러, 친구들은 나의 타임라인에 들어와 내가 예전에 남긴 글에 ‘ㅋㅋㅋㅋㅋㅋㅋㅋ’ ‘오글’ 등의 댓글을 남겼다. 심지어 내가 날씨 좋았던 날 래퍼 씨잼의 가사를 빌려 ‘TODAY IS A GOOD DAY’라고 썼던 것 조차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나는 과거의 글들을 쥐 잡듯 뒤져 다 삭제했다. 그 이후에는 결국 페이스북에 글을 1년에 5개 내외로 올리게 되었고, 그마저도 일기가 아닌 분실물을 찾거나, 친구들과의 여행 사진을 올리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미지 출처_티스토리 원려 블로그.jpg
이미지출처 _ 티스토리 원려님의 블로그 (http://forethought.tistory.com/280))


참 모순적이다. 흔히들 SNS의 발달로 개개인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창구가 늘어났다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전에는 블로그 하나였다면,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을 거쳐 요즘은 인스타그램, 브런치, 마이스페이스 등 내가 알지도 못하는 여러 SNS매체들이 늘었고 이에 따라 웹 및 모바일 사용자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SNS 채널을 취사 선택 하여 자기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올릴 기회가 많아졌다. 심지어,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마저 정말 개인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종의 창구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정 반대였다. SNS는 나의 글쓰기 욕구를 억압했다. 사실, SNS 자체가 그랬다기 보다는 SNS상의 친구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 친구들의 ‘오글거린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글거린다’ 한 마디가 내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언제 생긴지도 모르는, 그 단어가 나를 옥죄고 있었다. 단순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한 언어가 그 이상으로 사용 주체인 나를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오글거리다’라는 한 마디가 괴롭게 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과거에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니홈피 등 개인 계정에 남긴 글, 사진이 ‘오글거리는 흑역사’로 단정지어져 오르내리곤한다.

추상적으로 인지되던 현상에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현상은 단어를 매개로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실체 마저 집어삼킨다. 따라서 단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오글거린다’라는 말은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단어를 무기삼아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얼마나 억누르고 옥죄고 있는가.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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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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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phonium
    •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가는 글이에요. 저도 새벽감성에 길게 글쓰기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런 문체만 써도 오글거릴까봐 댓글 한 줄 쓸 때도 의식하게 되더라고요ㅠㅠ 한참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에 '오글거리는' 글을 많이 썼는데 요즘엔 잘 안 쓰게 돼요. 그냥 다른 게시물 공유나, 놀러간 사진 인증용이 되어버렸네요. '너 나중에 이불킥 할 거다'라는 말 듣고부터 알게모르게 더 의식하게 된 것 같아요..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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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둠칫둠칫
    • 저도 감수성에 젖어서 감성글 쓰는거 엄청 좋아하는데
      오글거림의 장벽을 마주하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한번 두번 넘다보면 익숙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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