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톡방 등 끊임없는 성희롱, 별 일 아니라고?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3.11 13: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세상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뒷담화는 일등공신이다. 대체로 좋은 내용도 아니고, 별 내용 아니어도 전해서 들으면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그러다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그냥 뒷담화도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데 요즘은 불명예스럽게도 카톡방 성희롱 뒷담화가 '대세'인가보다. 사실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지금 많이 알려졌다고 보는 게 낫다. SNS는 인생낭비라더니 나름 의미가 있기도 하다. 일련의 카톡방 성희롱 사건은 대체로 가해 당사자들의 SNS 계정(페이스북 등)으로 기록이 남고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명언을 정정하자. 참신한 낭비랄까. 누가 증거를 찾아서 밝힐 필요도 없는게 본인들이 증거를 옛소, 하고 준다.


카카오톡.jpg

 
  처음 카톡방 성희롱 사건이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올 게 왔구나'와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비슷하게 겪고 나니까 온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모르는 이들이 동지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어쩌다 얼핏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누구를 찍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담패설이 가득한 카톡방이었다. 그 친구 왈 '남자들끼리는 이러고 잘 논다'고 했다. 본인은 안하려고 한다지만 일단 친구들은 그렇다고 했다. 그런가. 이건 과연 남자의 특성인가. 그게 당연한가?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건가. 좀 이상한데. 흠. 본인은 안한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친구들이랑 지내지 말라고 말한다고 그 사람이 받아들일 것도 아니고.


1.jpg
 
 
  그랬던 것이, 내 일이 되니까 좀 달랐다. 나는 카톡방도, SNS도 다른 온라인도 아닌, 오프라인이었다. 전해들으면 기분이 꿀맛같이 더럽다. 사실은 좌절스럽고 아프다. 예전엔 기사를 보면 욕이나 한마디씩 하겠지만, 내 일이 되면 진지해진다.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다. 근거를 가지고 당사자와 마주하지 않으면 그것은 음모가 되어버린다. 카톡방은 굳이 비교를 하자면(비교하기는 싫지만) 기록이 남아있으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증인들 밖에 없었으니까. 그조차도 나는 곰곰이 따져보았다. 증인들이 왜곡되게 발언을 했을 가능성,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  평소의 가해자의 모습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원래 술을 마시면 음담패설을 즐겨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로 인해 불편해하기도 했다.

  왜 카톡방 성희롱이 난무하는가에 대한 원인은 따지지 않겠다.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괜한 이유를 찾고 싶진 않다. 다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피해 당사자가 왜 분노하고 상처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해봐야겠다. 이건 카톡방 성희롱이 '남자들은 그래'하듯이 분노와 상처가 '여자라서 그래'라고 답할 문제는 아니다. 성별은 내려놓을 문제다. 남자가 남자를 성희롱해도, 여자가 남자를 성희롱해도, 여자가 여자를 성희롱해도 아닌 건 매한가지다. 또한 다들 원래 그래 하며 씁쓸해하고 덮을 일은 아니다. 그것이 관습이라면 우리는 잘못된 것을 관습화한 것이며 왜 그런지도 모르고 원래 그래라고 덮기엔 무책임하게 보는 것이다.


2.jpg
 
 
  왜 상처받는가? 결국 가장 큰 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정말 와장창 깨져버린다. 친구든, 선후배든, 적당히  아는 사이든 적어도 어떤 관계의 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나와 친할 수록 그것은 믿을 수 없을만큼의 배신이 되어버린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아예 못되고 나쁜 사람이었으면 나았을까. 우리라고 생각했고 친한 줄 알았다. 적어도 친한 사람으로서 예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앞과 뒤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는 그와 친했으나 뒤에서 그는 술잔 앞에서 나를 기울였다. 후루룩 털어넣는 한 모금 술처럼. 이윽고 입맛을 돋구는 한 입의 안주처럼. 그에게 놀랄 수 밖에 없다. 친한 줄 알았던 그와 나의 사이에서도 나를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몸매를 품평한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벌써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겠거니, 벌써 잤을거라는 둥. 다른 친구에겐 알고보니 남자친구가 없는 게 매력이 없어서라 했단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태껏 나와 선후배 혹은 친구 등등으로 이름붙여진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니. 내가 발가벗겨져 입에서 입으로 돌아다닐 때 그는 즐거웠겠지. 정육점에서 갓 도축해 대롱대롱 매달린 고깃덩어리가 되어 불에 달궈진 기분이었다. 혹은 파르르 떨며 살아있을 때 회로 한 땀 한 땀 떠지는 기분일까. 맛있었겠지, 참.

   그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언제부터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졌을까. 언제부터 그 말을 돌고 돌아 들어올 가까운 사람에게 했을까. 모든 순간이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그런 생각이 쉼없이 몰아치면 괴롭다. 그리고 나에게도 화가 나고 놀랍다. 그런 사람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에. 다시 나에게 놀랄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런 성희롱은 나한테는 쉬이 찾아올 거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며, 안일하게 가까운 사람의 성희롱이 더 많다는 통계자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라면 그렇지 않을거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사방이 뻥 뚫렸는데 안전지대라 생각한 대가는 컸다. 끝이 없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3.jpg
 
 
  2차적인 상처는 당사자와 그 사실로 대면했을 때 새롭게 밀려온다. 카톡방 성희롱 관련 기사의 내용에서도 나온다. 당사자와 논의해보라며 둘을 만나게 했던 것이 더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그래, 그게 문제였다. 해결책인 줄 알았는데. 한번쯤은 대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나 역시 재판관이라도 된 양 나는 그와 만났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했고 술에 취해 말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정말 미안하다고도 했다. 잘 된 줄 알았다. 그와는 자주 볼 집단에 있었기에 당사자끼리만 매듭을 짓고 공론화시키지 않기로 했다. 나는 침착하게 잘 한 줄 알았으나 기분좋게 돌아온 SNS에는 그의 글이 올라와있었다. 억울하다고. 모함을 받았다고.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고 그를 옹호해주었다. 그가 공론화를 시작한 것이다. 다시 그에게 그 글을 보고 연락했을 때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는 근거없는 루머의 피해자가 된 것처럼 굴었다. 응급처치가 잘 끝났다고 생각한 상처는 더 깊게 터지고 만다.


4.jpg
 
 
  마지막 상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온다. 사람들은 그가 그런다는 걸 알고도 싫어만 했지 제재하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 커녕 목소리를 내준 적도 없다. 나의 이야기를 용기 내서 이야기했을 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이야기를 하기로 했어도 결과는 같았다. 그들에겐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니까. 본인의 일이 아니니까.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에는 여자는 여전히 불쾌하지만, 남자는 화해하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혼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집단 자체가 두려워졌다. 내가 없어지면 다들 편하겠지. 나도 새로운 곳에 가서 시작하고 말리라. 하지만 그 집단을 나가도 답답함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도망치는 것 또한 자존심 상했다. 다시 돌아와서 그를 마주하는 매 순간이  불편했지만 꾸역꾸역 나왔다. 계속 그를 불편하게라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상처뿐인 오기였다고도 생각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행히 불편해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지내는 날 보고 집단에서도 그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느 날 문득 사과를 해왔다. SNS에 그런 글을 올려서 너무 미안하다고. 원래 우리 사이가 참 좋았는데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완전한 사과는 역시 아니었다. 그는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지 미안한 게 아니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 반쯤 설익은 사과를 받는데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서 굳이 진심이 아니라면 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와 술잔을 부딪히며 사과를 받아주었으나 사과는 달콤하지도 포근하지도 않고 떫었으며 썼다. 그가 정말 미안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 역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신뢰를 깨버리고 마음을 자근자근 유리조각처럼 밟아놓은 것이 그인데.


실태조사.png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공공-민간 직장부문)에서도 성희롱은 응답자의 6.4%가 한번 이상은 경험해보았다고 했다. 피해경험자의 78.4%는 참고 넘어갔다고 한다. 남성피해경험자도 마찬가지다.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를 이야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이런저런 악영향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반면 2013년부터 불붙은 '00대 카톡방 성희롱'에서 대학생들에겐 이게 큰 문제로 느끼고 참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다른 성희롱 사건과는 차이점이 있다. 직장부문의 성희롱은 현실적으로 중재기구의 도움을 받는다해도 이후의 꼬리표같은 소문 등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계속 업무를 하기 위해서 불행히도 참아넘기는게 익숙해져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의 경우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처음 성희롱을 경험해보았고 중재기구도 상대적으로 잘 작동되기 때문에 참고 넘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소나 성별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고 하지만, 장소도 성별도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은, 그 상처는 큰 문제이며 익숙해질 수 없는 문제이다. 카톡방 성희롱 사건의 유일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은 좀 더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대신 제3자(대체로 인권센터 등 기관)가 개입하고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등 공론화가 된 점이라 생각한다. 공론화되면서 논의나 대안, 실태조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점도 있다. 물론 여전히 가해자는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별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쩌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반응이 비슷한지. 그러나 이렇게 다루어지면서 이제는 자신의 행동으로 친구이자, 선후배이자 아는 사람들에게 그 행동으로 카톡으로, 말로, SNS로 뒷담화를 받으면 조금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똑같진 않지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6.jpg
 
 
  하지만 가해자가 똑같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과 복수는 다른 것이니까. 그건 가해자가 피해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그 상처, 그 마음을. 쉽게 바뀌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생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평생 진심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기대한다. 언젠가 한 순간은 후회스럽고 미안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는 그래도 술잔처럼, 안주처럼 기울일 때 잠깐 멈칫하지 않을까. 그래서 피끓는 청춘, 틀어막힌 옛날사람이라서,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별 일  아니라고,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지켜보며 말해줄 것이다. 아니, 별 일이라고. 당신이 겪어보게 된다면 별 일이라고. 입장바꿔서 생각해보면 기분 상할 일이지 않냐고 진부하게, 뻔하게, 천편일률적으로 말해주기로 했다.


7.jpg
 
 
  결과는 나쁘진 않다. 한 번 데여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순간은 열심히 맞받아쳤다. 또다른 그가 생긴 것이다. 수컷과 함께 여행을 갔냐는 질문에 아내분한테도 암컷이라고 부르시냐고, 치마나 원피스를 자주 입고 오고 이왕이면 짧으면 좋다는 얘기엔 그럼 단추 두개 푸르고 다녀주시겠냐고 토스를 해드리기도 한다.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면 철컹철컹 감옥간다고 해주신다. 유난스럽다고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별 일이라고 해서 바뀌는 것들이 있다. 올해 들어 또 다른 그에게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되었을 때 속으로 새삼 놀라면서. 그래, 별 일이다. 그래야 진짜 별 일이 안 생긴다.


[장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