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살도 인생인가? [문학]

글 입력 2017.03.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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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인생’을 처음 만난 것은 정확히 9살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의 뒤편에는 항상 2칸짜리 작은 책장이 있었습니다. 그 책장에는 필독 도서라고 불리는 책들이 나란히 꽂혀져 있었고, 선생님께서 책을 읽는 시간이라고 일러주시면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가 서로 더 얇은 책을 빼가곤 했습니다. 키가 작아 맨 앞자리였던 저는 책장에 가려면 약간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아이에게 남는 책은 9살짜리에게는 조금 버거워 보이는 두꺼운 책들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읽어야 하나 살펴보는데 손때가 묻은 노란색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책 안을 펼쳐보고는 작은 글씨에 놀라 그냥 덮어버렸는지 묻은 손때에 비해서 맨 첫 장에 붙어있는 ‘제가 읽었어요!’ 종이에는 누구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날 ‘9살 인생’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9살 인생’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십여 년 후 서점에서였습니다. 새해 첫날,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의미 있는 책을 사러 왔는지 서점은 유난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찾던 책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쪽 통로가 꽉 막혀있어 소설이 진열된 곳으로 조금 돌아가는데, 노란색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원래는 흰 종이의 북커버로 숨겨져 있을 표지였지만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열어놓은 덕에 노란색 ‘9살 인생’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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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인생’의 주인공은 9살의 여민이 입니다. 서울에 올라와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다 산동네의 꼭대기 집에 살게 됩니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이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삶은 아니었기에, 여민이 자신은 그때에 이미 세상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처음 읽었던 9살 때에도, 다시 읽었을 때에도 여민이는 여전히 성숙했습니다. 본인보다 더 불우한 타인을 이해하려 하고, 동네 아이들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서는 대범한 그 모습이 9살 당시에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물론 그도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걱정이 되어 눈물을 찔끔 흘리는 어린아이이지만요.



#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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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이가 산동네에 이사를 온 후 처음 만나게 된 아이는 기종이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누나와 단 둘이 살았는데, 이상한 말과 허풍으로 여민이와의 첫만남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둘은 친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여전히 좋기 때문이다.”

  책은 여민이의 시점으로 쓰여졌지만 위의 말을 통해 기종이가 여민이를 친구로써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9살 당시에는 읽으며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산동네의 여민이가 아닌 어른들의 틀에 맞춰지는 여민이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기종이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골방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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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골방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골방철학자. 동네아이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로 불리는 그와 대화를 하는 건 유일하게 여민이 뿐이었습니다.

“나는 불행하게도 지구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단다.”

  골방철학자의 불행한 끝의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날의 여민이었는지, 글을 쓰는 화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이 골방철학자가 ‘9살 인생’에서 가장 허무한 등장인물이라고 느꼈고, 다시 읽었을 때에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것들 것 꿈꾸었으나 정작 자신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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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이의 첫 짝꿍이 된 우림이는 새침데기 소녀입니다. 그를 좋아하지만 도리어 성질을 내버리는 것으로 그녀의 관심을 표현하는 탓에 둔한 여민이는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네 기분을 맞춰 주려고 그런 거라구!”

  여민이의 ‘9살 인생’을 다채롭게 해주었던 인물은 단연 우림이였습니다. 황당함, 의문, 억울함, 답답함 에서부터 기다림, 호기심, 기대와 즐거움까지. 앞으로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산도 아닌, 그림도 아닌 우림이를 통해 배워가는 것입니다. 9살의 제가 까칠한 우림이를 보며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면, 오늘날의 저는 우림이를 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도 채 살지 않은 ‘9살’의 일상들을 ‘인생’이라고 칭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른의 시점에서 보면 9살은 참 어린 나이입니다. 하지만 ‘9살 인생’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9살은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세계의 주인이 되었고 이제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으로 칭함으로써 작가 자신도 지나왔을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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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소설의 끝은 말 줄임표로 끝맺음으로써 그 시간이 앞으로도 이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민이의 삶이 어떻게 이어져 갔는지 생각해보며 나의 삶도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책을 덮지 않고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는 데에 바빴던 시간들 훨씬 이전에 해와 함께 떠있는 달을 처음 보고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날의 기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소 오래 전이라 흐릿해져 버린 기억이겠지만, 9살 때 즈음 읽어보았을 책과 다시 마주하며 어린 나의 인생을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요?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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