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철학과 문학의 관계 [문학]

미완성 단상일지라도
글 입력 2017.03.10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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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학의 관계
_ 미완성 단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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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와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2004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철학은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대담을 갖는다. 그리고 2013년 9월 두 철학자의 대담은 민승기의 옮김으로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된다. 2013년 11월 문학동네의 팟캐스트 채널 ‘문학 이야기’에서 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문학의 단상을 시작했다.
 
 
철학자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먼저 버려야한다. 텔레비전에 나와 현재의 문제들을 비롯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이 이런 생각의 구체적인 예가 된다. 이런 생각이 왜 잘못된 것인가? 철학자는 자신의 문제를 구성하는 사람, 즉 문제의 창안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텔레비전에 밤마다 출연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인 것이다.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도입부, 신형철이 읽은 대로)
 
 
바디우의 문장을 읽고 나서 그는 그 나름대로 만들었다는 다음 문장을 읽는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아무리 좋은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우리는 그다지 멀리 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던지면 비록 끝내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있게 될 것이다.”
(신형철, 문학동네 문학 이야기 오프닝 중)
 
 
그리고 그는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나쁜 답변자가 아니라 좋은 질문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곱씹어 볼 주제라고 했다.
 
2017년 3월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를 읽던 문학을 하는 한 사람은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온통 초점이 맞춰진 채, 책의 몇 문장 중 과감하게 ‘철학’을 대신해 ‘문학’을 집어넣고, 새로운 문장을 곱씹게 된다.
 
문학은 상황과의 불가능한 관계를 무대화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문학이, 그러니까 있음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는 사유인 문학이 관계라 할 수 없는 관계들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해서 역설적인 관계, 관계 아닌 관계, 균열의 상황이 존재할 때마다 문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은 정당한 것이 된다.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바디우의 문장 중, 철학을 문학으로 대체함)
 

철학을 문학으로 대체해버리는 건 보다 많은 것들을 섬세하게 고려한 후 이루어졌어야 하겠지만, 과감하게 대체하였을 때, 마치 철학과 문학이 같은 것처럼 되었을 때, 그럼에도 이런 대체의 과정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이유들을 떠올리며 그대로 두고 곱씹어본다.
 
위의 문장은 철학의 발생에 대해 말했고, 문학의 발생으로 다시 읽혔다. 역설적인 관계, 관계 아닌 관계, 균열의 상황, 이 상황은 결국 미끄러지고 배반당한 상황이고 그 실패의 지점, 통제할 수 없이 위협받는 순간에서 문학이 발생한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 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들은 법과 금기의 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요구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21세기 문학 사용법 중)
 
 
철학과 문학은 선과 악이 아니라 진실, 그러니까 윤리에 자리한다. 윤리(진실)가 발현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고, 그를 위해 질문하며, 결국 윤리를 대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과 문학이 발생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윤리의 발현을 위해 질문하는 순간이 되고, (바디우는 ‘철학적 상황’이라고 일컫고, 곧 ‘문학적 상황’이기도 한) 그 순간은 뒤틀리거나 초월하거나 몰락하거나 창조하는 순간인 것이다. 왜 하필 그런 순간이냐고 묻는다면 다소 불친절한 대답일 수 있지만, 우리의 말들이 미끄러지고 우리의 행동이 무질서하게 발산하는 지점이 실패의 지점이자 곧 새로운 진실이 발현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라 해야겠다. 그리고 그 때 발생하는 윤리(진실)로 인해 그 순간은 불가피하게 발생해야만 하는 (또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고 이는 아마 철학과 문학의 쓰임, 우리가 이들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한 이해와도 연결될 것이다. 즉 철학과 문학이 ‘관계’라는 이름으로 엮일 수 있는 것은 철학과 문학 모두 공통된 발생의 순간에서 불가피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규정짓는 것은 어리석다. 관계라는 이름으로 엮여갈 때 함께 묶이고 덧붙여질 수밖에 없는, 따라서 마땅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짧은 생각은 멈춘 자리만큼 어리석음을 남긴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무색하여 철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짧은 생각을 적어본 바다.
(2017년 3월 문학하는 한 사람)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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