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대들의 '알 수 없는' 찰나는 언제였나요? [문화 전반]

'플라멩고'와 '메종 드 히미코'로 본 나의 '알 수 없는' 순간들
글 입력 2017.03.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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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했다. 스페인에서 보았던 플라멩고 춤과, 제주도에서 만났던 세네갈 전통 음악 밴드의 공연, 또는 집에서 혼자 봤던 사진 작품들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미학과 전공 수업을 듣기로 하였다. 미학과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는 법이나 사진을 인상깊게 찍는 법 따위의 일은 배우지 않는 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정신을 확 들게 하고, 가끔은 살아있는 느낌을 깨우쳐 주었던 예술에 대해 질문을 던질 기회를 갖고 싶었다.

 개강 후 첫 주 수업에서 ‘미학원론’ 교수님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근대의 합리주의적, 이성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로 비합리적, 비이성적 사고방식과 경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생겨났다. 다만, 이러한 접근법은 ‘감성’, ‘상상력’, ‘창의성’등의 한 개의 단어를 넘어 ‘마음이 아려옴’, ‘환희의 눈물이 맺힘’등 지나치게 많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대중들은 이러한 경험을 ‘알 수 없는 무언가’라는 말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전공 선택에 있어 번복을 거듭하다, 결국 ‘미와 예술을 철학적으로 다룬’다는 사전적 정의를 가진 학문을 선택한 건 아마도 이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영역에서 받은 정의내릴 수 없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느낌의 찰나는 그 순간이 지나가면 감정은 떠나가고, 그 잔상만 남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 순간이 왜 그토록 우리에게 진한 향을 남기고 갔는지 고민하며, 비슷한 향을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도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겪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정리해보고 싶다. 그 순간들은 찰나에 사라졌지만, 모순적이게도 지금의 나를 구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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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비야의 ‘플라멩고 박물관’에서 관람한 플라멩고(flamenco) 공연. ‘플라멩고 박물관’은 그 역사와 예술가들로 명망이 높은 곳은 아니며, 샹그리아 한잔과 평균 이상의 공연으로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있다. 공연 시작 전에는, 샹그리아를 챙기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어수선하였다. 곧 무대 위에 중년의 여자 무용수 겸 가수가 올라왔다. 참고로 플라멩고 공연에서 한 명 또는 여럿의 무용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옆에서는 연주자가 기타로 반주를 한다. 붉은 빛의 긴 드레스로 꾸민 그녀는 잠시 몸을 풀더니 빠른 리듬에 맞춰 준비한 몸짓과 구슬픈 가락을 선보였다. 플라멩고 춤은 탭 댄스로도 유명한데, 무용수는 팔과 허리를 움직이는 동시에 리듬에 맞춰 발을 굴렀다. 그녀의 공연은 실수 하나 없이 완벽했다.  공연을 마친 후, 사람들의 앵콜 요청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가 그 모든 동작과 멜로디를 살면서 처음 하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상상일 뿐이다. 그녀는 아마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의무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며, 각 공연마다 즉석으로 새로운 안무와 노래, 반주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동작과 그 소리를 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리를 낼 때마다 그녀 자신도 처음이라 들뜨고, 몸을 움직일 때는 그 동작의 새로움에 감탄하고 있다는 상상을 혼자서 해본 것이다. 그녀가 춤을 추며 흩뿌린 땀 때문인지, 공연 내내 신의 부름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그녀가 한 시간 내내 새로운 자극에 살아있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동시에 그 공연을 보는 나도 '알 수 없는 무엇’에 휩싸여 한 시간 내내 살아있는 기분을 만끽했다.

세비야를 떠난지 반 년이 넘은 지금, 3월의 나는 매 순간 처음인듯한 그때 그장면을 그리워하며 플라멩고를 찾아 듣는다. 내가 느끼는 순간이 낡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 또는 새로 겪는 일이지만 왠지 쳇바퀴 돌듯 지루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면 나는 플라멩고를 듣고본다. 그러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나의 그 찰나가 처음이자 마지막과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플라멩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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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은 영화 ‘메종 드 히미코(maison de himiko, 2005)’에서 나온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물들. 이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다리가 불편한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던 그는, 이 영화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담았다. 메종(maison)은 프랑스어로 집을 뜻한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집은 게이들을 위한 실버 타운이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혹은 가족을 스스로 버린 게이들은 늙고 병이 들어 이 집에서 지낸다.

 나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영화 속의 바로 이 연약하고 모난 게이들과 이들로 대표되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이 집 밖을 나설 때면, 동네 아이들은 쓰레기를 던지고, 어른들은 못 볼 것을 본듯 눈길을 피한다. 이들은 이러한 사회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내 사회를 격리한건 자신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다는 듯, ‘메종 드 히미코’에서 함께 모여 바보같이 웃고 노래한다. 그리고 춤춘다. 그들은 ‘늙은 게이들’이라는 메종 밖의 진부한 말로 묶을 수 없을 만큼 각자 특이하고, 아름답다. 사실 각 자 개성이 너무 뚜렷해 몇 개의 단어로 모두를 묶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이 사람들이 웃음 뒤에 가려진 상처들을 조금씩 극복하고, 집 밖에서도 자유로움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훈으로 끝내기에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살아있다. 이들은 사회의 기준으로는 재단했을 때, ‘다양하다’는 가치중립적 말보다는 ‘이상하다’, 혹은 ‘특이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감독은 그 특이함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모순성을 그들의 웃음과 눈물, 노래와 춤으로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깔깔’ 웃거나 몰래 웃는 대신, '알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이 사람들과 함께 깔깔거리게 된다. 영화에서 전해진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내가 숨기고 있던, 혹은 숨기기에 실패한 나의 이상한 부분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웃어 넘길 수 있는 때가 올것이라 예언하는 듯했다. 물론, 그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고 난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 그들이 특이하지만 행복하다고 해서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판단은 비합리적이다. 또한, 그들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어찌 보면 운 좋은 복지 공간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꾸렸고, 그건 조금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우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 안의 아름다움에 공감을 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찾기도 하며 말이다.

'플라멩고'와 '메종 드 히미코'에서 받은 감정들은 '알 수 없는'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오늘이나 내일, 나는 또다른 정의 내릴 수 없는 순간을 겪으며, 그 대상의 명칭인 '예술'에 대해 더욱 궁금해질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찰나를 만들어 내 삶을 구성하냐고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합리적 판단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것'들로 내 시간이 채워질 때, 비로소 나는 완전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중년 무용수와 '메종 드 히미코'의 거주자들을 찾기 위해 여행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었던 순간들은 언제였는가?


[양유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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