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망설임은 너의 일이 아니다 [문학]

글 입력 2017.03.0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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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서랍에서 지우개를 찾던 중 아주 낡은 공책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오래되고 누런 종이에는 꽤나 문학적이고 매력 있는 시들이 쓰여 있었다. 나는 글씨체를 보고 시의 주인이 나의 아빠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으며 어딘가 씁쓸하기도 했다. 이렇듯 누구나 자신의 마음 깊숙이 망설여지는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에게는 그저 ‘아빠’이기만 했던 한 남자의 어릴 적 꿈이 시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젠 너무 오래되어 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 꿈이든, 이제 막 파랗게 피어나기 시작한 꿈이든, 이는 언제나 우릴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이 설렘을 더욱 자극하는 소설 하나가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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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1979년도에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나’는 10년 동안이나 무언가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책을 쓰는 것이 무모한 행동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책을 쓰기 전 하루키와 굉장히 비슷하다. 그 또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꽤 오랫동안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그의 매력을, 무언가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모두 담고 있는 책이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 것이 무슨 소설이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 나 또한 이 것이 ‘완벽한’ 소설이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도 했었다. 우선 굉장히 짧고, 누군가 일기를 쓴 것처럼 띄엄띄엄 쓰인 내용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다 읽고 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의 의구심을 모두 없어지게 만든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의 순수한 욕구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행했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소설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한다고 비판하지만, 소설로서의 ‘조건’이라는 형식적인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것이 왜 ‘꼭’ 필요한가? 나는 누군가의 ‘내면’이 그대로 반영된 것 자체가 이미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통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마음 깊숙이 꿈은 있지만, 자신이 없었던 나에게 말없이 위로를 주었다. 그때 당시 나는 책은 아니지만 창작물에 대한 2차 글을 적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쓰고 싶었고 다른 이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의 생각을 내보이는 일은 언제나 ‘불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하루키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위로와 동력을 주었다. 그의 책은 항상 그렇듯, 나와는 동떨어진 것 같은 내용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듯한 ‘조용한 위로’를 준다. 그는 직접적으로 ‘괜찮아’라고 말해주기 보다는 책의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너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라고 말해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197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를 도쿄 진구구장에서 보던 중, 외국인 선수였던 데이브 힐튼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이유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씁쓸하게도 많은 이들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욕망이 강력히 자극받는 순간이 있다. 바로 다른 이의 욕망과 의지가 실현되는 것을 직접 보았을 때이다. 하루키 또한 대학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지만 일에 치여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한 야구선수가 공을 치는 모습은 마치 어릴 적부터 야구선수의 꿈을 품고 살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실현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봄에 부는 바람처럼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숨겨진 꿈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순간순간 우리를 흔드는 “바람의 노래”를 우리는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지금의 편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듣지 못 한척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한다. 이제는 당신이 마음 깊숙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를 들을 차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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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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