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이하고 단순한 회화 오세열의 암시적 기화학 [시각예술]

학고재- 오새열展
글 입력 2017.03.0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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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고재에서는 2월22일부터 3월26일까지 오세열의 <암시적 기호학>展이 열린다. 암시적 기호학이라는 제목만 보았을 땐 무척 낯설고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낙서화’에 가깝다. 의미 없이 나열된 숫자들과 그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물들은 서로 어떠한 연관성도 갖지 않지만 그의 담백하면서도 미감이 돋보이는 구성법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바탕 역시 회색, 검은색 등 단색조로 칠해져있다. 이러한 색감은 암울한 느낌보다는 따뜻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화면 위에 따뜻하고 정감이 가는 필체로 그려진 기호들은 다소 칙칙한 화면들을 밤하늘이나 우주처럼 연상되게 하며 혹은 분필로 낙서들이 그려진 칠판, 누군가의 방 벽면처럼 보이게 한다.

흔히 기호학이라는 단어는 계산적이고 수학적인 딱딱한 학문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오세열의 기호학은 조금 다르다. 그의 기호학은 자신의 상상을 화면에 담도록 도와주는 매체이다. 그의 화면 속에는 일렬의 숫자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중간 중간에는 방금 막 그의 머릿속에서 연상된 듯한 연관성 없는 기물들이 등장한다.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무거움도 추상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는 무의미하고 기계적인 형태와도 거리가 멀다. 구상화보단 추상화에 가깝지만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는 듯한 화면 구성은 흔히 불규칙하면서도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묻어나는 우리의 낙서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더욱 재밌는 것은 예술가의 우연한 상상력으로 그려진 듯한 이 그림들을 계속 감상하다보면 사실 작가의 우연을 예측한 고도의 회화적 법칙이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숫자는 일렬의 법칙을 가진 듯 하면서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고 또 다른 법칙으로 이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자꾸만 다음 숫자를 연상하게 하고 또 그것을 반전시키는 묘미를 준다. 또한 플라스틱 수저, 장난감, 단추, 고추, 물고기, 새, 나뭇잎 등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물들도 사실 여러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작가의 미적 취향을 반영해준다. 그는 플라스틱 수저나 단추, 집게, 조개껍질처럼 너무나 소소한 사물들을 화면에 그려 넣거나 콜라주하면서 따뜻하면서도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화면을 완성했다.

이와 같은 상징성이나 주관적인 화면 표현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내게 강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의 뛰어난 미적표현능력이었다. <암시적 기호학>展에서 보여주는 그림은 다소 진부하거나 심심할 수 있는 숫자들과 일상 사물들의 조합을 재밌고 정감이 가도록 그린 그의 화면 구성을 통해 작가의 미적 센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콜라주된 사물들조차 작가의 손길로 인해 세련된 기물들은 아니지만 어딘가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미적 오브제로 변모하였고 숫자 중간 중간 등장한 작은 사물표현을 통해서도 작가의 뛰어난 미적 솜씨가 돋보였다. 이번 <암시적 기호학>展은 내게 우리에겐 너무 사소해져버린 일상의 기물들에 주목해 그들에게서 미감을 불러일으켜 기호학이라는 이름하에 미적화면으로 재탄생 시킨 그림들을 통해서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일상에 새로운 시각을 깨울 수 있었던 특별한 전시였다.


[김휘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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