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그러진 애국심에 날리는 유쾌한 한 방: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문학]

글 입력 2017.03.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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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며칠 전은 삼일절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삼일절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 고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의 한 몸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분들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 모두가 빚지고 있는 과거에 대해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 태극기에는 존경의 의미, 그리고 그분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태극기가 조금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얼마 전부터, 자칭 '애국 보수' 집단의 시위에 태극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언론은 이들의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그 태극기가 삼일절에 우리가 떠올리는 그 태극기와 같은 상징이라기에는 의아스럽기 때문이다. 그건 더군다나, 그분들의 나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로 시작하여 "너희는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른다." 라는 말로 끝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와 '너희'의 이분법은 언제나 당황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 응당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국가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혼란스럽다. 있는 그대로의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 나라 사랑인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나라 사랑인지, 모두가 정답이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갈등의 족쇄처럼 변해버린 애국심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모습이 투영된 주인공 스기하라는, 제목 그대로 그 누구도 어떤 꼬리표도 달 수 없는 세계로 힘차게 달려 나간다.



2. 가네시로 가즈키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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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네시로 가즈키 >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인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그러나 지난번에 소개한 바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와 마찬가지로,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이 아니기도 하다. 바로 그가 재일교포 출신이기 때문이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전향으로 인해 일본인 학교에 진학했지만 여기서도 심한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재일'로서의 삶은 가네시로 가즈키 자신의 소설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그의 첫 장편 소설인 『Go』 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이야기될 만큼 작가의 경험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Go』는 그에게 일본 대중 문학 최고의 영예라 불리는 나오키 문학상(제 123회, 당시 최연소 수상)을 안겨준 작품이지도 하다.

 아직 가네시로 가즈키의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불우하고 혼란스러웠던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그것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니, 아마도 그의 소설은 무척이나 우울하고 분노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무척이나 유쾌하고 발랄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그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만큼이나 생동감이 있다.

『Go』의 주인공 스기하라는 분명 아웃사이더이지만, 그 자신의 말마따나 스기하라의 이야기는 '무슨무슨 주의'와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이념과 나라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은 분명 얽히고설키며 어린 스기하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끙끙 앓다가도 결국 "문제없어!" 하고 외치며 다시 일어서는 듯한 스기하라의 모습은, 분명 가벼워 보일 수도 있을 터인데, 오히려 독자에게 묵직한 한 방을 맞은 듯한 얼얼함을 준다. 아마도 그건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행동이 역으로 소설이 작가의 현실적인 개인사와 뗄 레야 뗄 수 없기에, 소위 '전형적인 성장 소설'의 클리셰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과 고뇌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3. 『Go』의 배경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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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의 한국어판 표지 >


  『Go』는 재일교포 3세인 소년 무법자 스기하라와, 스기하라의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소녀 사쿠라이의 연애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스기하라는 프로 복서였다가 지금은 파칭코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이다. 그리고 두 사람 역시, 당연하게도 재일교포이다.

 스기하라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쿠라이라는 소녀에게 푹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두려움 역시 커진다. 왜냐하면, 사쿠라이는 스기하라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이 재일이라는 것을 알면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헤어지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스기하라는 '사쿠라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의식적으로 되뇌면서도 자꾸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미루게 된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교포들이 어째서 재일교포가 되었는지에는 여러 사연이 있겠으나, 이 소설의 배경은 1968년에 태어난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극히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정확히 말해서 일본이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한국이 독립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 사람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이다. 스기하라의 아버지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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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동포들, 통계에 따라 그 수가 백만 명이 넘어간다고도 함 >


 그러나 식민 지배가 끝난 뒤, 모국에서는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일본 내 재일교포 사회 역시 두 세력, 즉 북한(북조선)을 따르는 조총련과 남한을 따르는 민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적어도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도와 줄 것처럼 보였던 북한의 이념에 끌려, '재일 조선인' 국적을 취득하고 조총련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아들인 스기하라 역시도 중학교까지 조총련계 학교에 보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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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 조선 학교(조총련계 학교)의 모습 >


 하지만 북한이 실은 재일 조선인을 위해 아무 일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하와이 여행을 구실 삼아 국적을 바꾼다. 미국 땅인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는 조선(북한) 국적이 아니라 한국 국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국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거야.
네 녀석은 어느 나라 국적을 사고 싶으냐?"

- 본문 p.12 중에서


 중학생이던 스기하라에게 아버지가 했던 이 말은, 그것이 결코 과장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단 한번도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폭로이다. 국적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스기하라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한때 조선인이었고, 한국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원한다면 스기하라는 네덜란드 인이 될 수도, 스페인 인이 될 수도 있다. 재일교포라는 그의 상황이 그의 국적을 몇 번이나 바꾸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은 필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순전한 우연이다.

 그런 우연 속에서, 국가에 대한 애정을 당연하게 가지라는 것은 사실 부당한 요구다. 스기하라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일본인 학교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마치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기하라가 그런 공동체적인 애정과 소속감이라는 것에 완전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스기하라와 그의 조선인 친구 정일이와의 관계에서 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정일이는 스기하라가 여자친구인 사쿠라이와의 약속을 미루면서까지 만나려 하는 소중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런 정일이는 스기하라와는 정 반대로 조총련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신과 같은 약한 이들을 품어주는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고 싶다는 꿈꾸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일본인 남학생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고에 의해 죽고 만다. 정일이의 죽음과 더불어 여자친구인 사쿠라이조차 그가 재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관계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스기하라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냉혹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하며 괴로워한다.

 

4. 마치며

  
"이제는 더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로든 갈 거야."

- 본문 p.261 중에서


 마침내 스기하라가 얻은 결론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가두어 버린다면 국적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를 '나'로 만드는 모든 것들이 우습게도 나를 구속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제멋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재일교포라는 스기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사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와 스기하라는 당연히 처한 입장이나, 국가에 대한 고민의 차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애국심이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집어 삼키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국가나, 이념으로 규정되는 흑백논리 중 어느 하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일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루는 것이 오직 외부적인 상황뿐이라면, 그 일그러진 애국심을 지키기 위한 나라면, 우리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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