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문라이트 >, 달빛 아래 온전한 나 [시각예술]

2017 아카데미의 이유있는 선택
글 입력 2017.03.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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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의 선택은 '문라이트'였다. 무수한 극찬을 받은 '라라랜드'를 눌렀으며 작품상 수상자를 잘못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는 바람에 문라이트는 개봉 초기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매력적인 포스터와 자자한 명성에 이 영화를 정말 보고 싶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달빛 아래 홀로 선 모든 이들을 위하여, 모든 이들의 인생에 바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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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귀가 얇다'고 표현한다. 남의 말에 잘 휘둘리면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웬만큼 고집이 센 사람들도 이렇게 귀가 얇아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 속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 정도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걱정하고 나름대로 꾸며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만들어가는 당신의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인가? 당신 스스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당신 스스로가 좋아하는 이미지인가 혹은 사람들이 바라는, 기대하는 이미지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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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은, 샤이론은, 블랙은 흑인이다. 이는 그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이자 가장 강력한 단어가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만 해도 스스로를 부를 때 '황인종'이라는 유색인종으로서의 자각이나 백인에 비해 노란 피부를 가졌다는 인식이 없는 편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이 아시아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흑인은 수많은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과 함께 살아가고, 알게 모르게 차별 받는 유색인종으로서 black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샤이론에게 자신의 피부색을 극복하는 것은 온전한 자기자신을 형성하는 첫 걸음이었을테다. 그리고 이는 '흑인 아이들은 달빛 아래서 파랗다'는 후안의 대사와 함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자 제목이 된다. 달빛 아래서 그는 온전한 자신일 수 있는 것이다.

 폭력, 상습적 마약. 샤이론이 살던 동네의 사람들은 대개 그랬다. 굳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며 싸우고 싶지도, 큰 소리를 내고 싶지도 않았던 샤이론은 금세 또래집단 사이에서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런 역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이해해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와 우정을 쌓고 사랑을 나눈다. 채 12살도 되지 않았을 나이에 자신이 '호모'냐며 묻는 아이는 이미 그때부터 자신을 거부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습관이 된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는 그래서, 케빈이 그와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었을 때 더욱 크게 해소됨과 동시에 깊어졌을 것이다.

 샤이론은 몸을 키운다. 블랙은 일어나서 바로 바벨을 들어 운동을 하고 구역을 맡아 마약을 판다. 꿈꾸던 삶과는 달랐으리라. 그가 기대했던 삶이 이런 삶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강해지길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한 척 보이려 노력했고 금이빨과 멋진 차, 우락부락한 몸집으로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 마약에 찌들어 자신을 방치했던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다시 만나 눈물을 흘린다. 그 덩치에서 나오는 작은 눈물은 큰 감동과 울림이었다.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친 뒤 한참만에 연락이 된 케빈의 전화에 샤이론은 막상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 날 바로 먼 거리를 달려 케빈에게 간다. 매사에 낙천적인 듯 보이며 긍정적인 케빈은, 말수가 적지만 생각이 많은 샤이론과 매우 잘 어울린다. 샤이론이 케빈을 차로 집에 데려다 줄 때, "그래서 오늘 어디서 잘 건데?"라는 케빈의 질문에 그저 라디오의 볼륨을 키우는 장면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설레는 장면으로 한참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긴장감과 설렘이란.

 마찬가지로,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은 일생에 케빈 한 명뿐이었음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샤이론의 모습은 정말 순수했고 가슴 아팠으며 절절했다.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샤이론은, 반대로 자신을 받아주었던 케빈을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이다.

 더이상 영화는 진행되지 않지만 케빈을 만난 후의 샤이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할 기회를 남들이 아닌 자신이 가졌을 것이고 그의 곁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그를 지지하는 케빈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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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Let your head rest in my hand. Relax. I got you. I promise. I won't let you go."
"좋아. 내 손에 머리를 맡기고 편히 누워. 긴장 풀고. 내가 잡고 있을게. 약속할게. 놓치지 않을게."

"At some point, you gotta decide for yourself who you're going to be. Can't let nobody make that decision for you."
"어떤 순간이 오면,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거야. 그 결정을 다른 사람이 내리게 두지 마."


 모든 이들의 인생에 바치는 영화라는 포스터의 문구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우리는 연대하며 서로를 지지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나아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할 것이다. 달빛 아래에서 순수한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샤이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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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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