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각] 의미부여하기

글 입력 2017.03.0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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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뒤샹의 <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미술학도도 아니고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필자 역시 교과서 속에서, 수업 시간에, 책에서 이 작품을 자주 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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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작품’은 작가, 예술가가 창작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예컨대 모네의 그림이나, 로댕의 조각상처럼 예술가의 손길을 거쳐 창작된 것들 말이다. 이러한 작품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뒤샹의 <샘>은 충격 그 자체였다. 뒤샹이 <샘>을 처음 출품하였을 때 전시의 운영위원들은 이 작품의 전시 참여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샘>이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된 것은 그것이 작가의 창작 과정을 거치지 않은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한 이러한 레디메이드 작품은 문화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관점을 변화시켰다. 이전의 문화예술은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창작’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문화예술의 범위를 ‘선택’의 영역에까지 확장시켰다. ‘어떤 작품을 그리고 조각할 것인가’와 함께 ‘어떤 것을 작품으로 선택할 것인가’까지 문화예술 활동이 된 것이다. 전자의 경우 문화예술 작품은 전적으로 그것을 생산하는 예술가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어떤 것도 ‘선택’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유동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해석자)가 중심이 된다.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어떠한 물건에 어떠한 의미 부여를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르셀 뒤샹은 모두가 ‘변기’라고 생각하는 기성품을 선택하고 ‘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도 일상에서 (그 당시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한 뒤샹만큼 획기적이지는 못할지라도) 주변의 것들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부여’라는 것이 사실 대단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물이나 세계가 가진 표면적 의미 그 이상의 것, 그 이면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의미부여라고 생각한다. 매일 신고 나가는 신발, 오늘따라 맑은 날씨, 길가에서 마주한 풍경 모든 것이 의미부여의 대상이 된다. 객관적인 사물이나 상황 그 자체, 사회 구성원들이 구축한 공통의 가치체계에 나만의 해석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의미부여인 것이다. 동일한 세계이지만 그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세계는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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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xabay)


   일상 속에서의 의미부여는 세계와 사회에 의미를 덧붙이는 행위이자, 나의 삶에 의미를 덧붙이는 행위이다. 사실 나는 무언가에 의미부여하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굉장히 편향된 방식으로 나의 주변의 것들에 의미부여를 한다. 내가 마주하는 것들의 열에 아홉 정도에 대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의미부여하는 것에 대해 혹자는 말한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맞는 말이다. 사실 내가 어떤 것에 의미부여를 했다고 해서 무언가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주관적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분명히 있다. 작은 것들에도 의미부여를 하는 과정은 내겐 내 주변의 것들을 나를 중심으로 재편성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대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나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나름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각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또한 각자가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들은 그들의 지향점과 밀접하게 맞닿아있을 것이다. 예컨대 뒤샹의 선택과 의미부여는 기존의 문화예술을 넘어서는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지향을 담고 있을 것이고, 필자의 경우 일상 속에서 행복의 순간들을 자주 맞이하고 싶다는 지향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의미부여하든 그것에 옳고 그름은 없다. 사람마다 지향점은 모두 다르고, 모두 가치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예술의 능동적인 해석자일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선택’의 주체이고 ‘의미부여’의 주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역시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조금 과해도, 일반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뒤샹이 <샘>이라는 작품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그렇게 사물을 선택하고 의미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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