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르겠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문화 전반]

너무 둔한건지, 두려운건지
글 입력 2017.03.01 23: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진1.jpg

 
  나에게는 인생 퀘스트가 하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것. 어른이 되면 잘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똑같다. 나만 모르는 것 같다. 주변을 보면 찬란함과 암울함의 골짜기를 넘나들고 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게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헤어지고 나서도 상대방을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건 공부를 하거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기적이다. 그 수많은 사람 중 만나, 네 마음이 내 마음과 같고,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세 박자가 모두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것 역시 감사한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의 정의는 생각보다 넓다. 먹는 것, 보는 것 등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취향이나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쓰는 말이다. 나도 그런 좋아함이라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래도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일 것이다. 비오는 날의 김치부침개, 어묵탕, 골뱅이소면무침. 흑맥주와 빨간뚜껑 소주, 청하. 이슬톡톡에 자몽에이슬 반반. 추리소설과 범죄수사 및 느와르 영화. 영국식 악센트와 중저음. 테너색소폰과 첼로. 드라마와 영화, 각종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한다. 말하고 글쓰고 표현하는 것(말이 많은 건 이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능력으로 뭔가를 얻어내는 것. 힘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고양이보단 강아지. 시바견, 웰시코기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 강아지. 표현은 잘 안해도 늘 신경쓰고 오래오래 같이하고픈 우리 가족들,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워 불러보는 나의 소중한 벗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존재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않은 남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그 좋아함과 이 좋아함, 이 사랑과 저 사랑은 다른 것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모든 취향과 성공을 이루더라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이 문제는 대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하며 고민이 정신적 유산처럼 DNA나 지문에 전해내려온 것만 같다. 부끄럽게도 나는 영영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까봐 일찌감치부터 조급해하고 있었다. 이 고민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또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시간은 빨리 간다.


사진2.jpg
 

  그렇다. 지금부터 하는 이 많은 질문은 불신이기도 하고 부러움이기도 하며, 가장 남들에겐 물어보기 힘든 호기심이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평생 외로움을 함께 할 동반자로 잘 모르는 타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과 사랑이 각각 어떤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얼마 전까진 이 사람이 너무나 좋았는데 어떻게 금방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걸까? 그렇다면 시간은 그리 사랑의 변수가 되지 않는 것일까? 누군가는 아주 오래도록 사랑하고, 누군가는 아주 짧고 깊게 사랑하는 건가. 사랑도 누군가에겐 너무나 그 말이 무겁고, 누군가는 숨쉬듯 편하게 말할 수도 있는 걸까. 사랑을 느끼는 대상과 형태는 왜 그렇게 다양할까. 사랑의 느낌 또한 사람마다 다른걸까. 그리고 그렇게 사랑으로 너무나 괴로웠는데도 왜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걸까. 

  이 모든 것을 종족번식을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극단적으로 사랑이란 건 진한 마약성분처럼 쾌락만을 주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나 상실감 같은 걸 굳이 메커니즘 안에 넣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지금 좋고 지금 사랑하고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종족번식에 가장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사랑으로 시험당하고 있다. 남의 연애얘기가 가장 재미있는 걸 보면 신이 있다면 우리의 사랑이야기로 재미 좀 보려는 신의 재치있는 장난일수도, 남모를 뜻이 있는 과제일 수도, 우리가 자처한 과제일 수도 있다. 무엇을 배우고 느끼기 위함인가.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게 더 치명적이다.

  그나마 내가 위안을 얻었던 것은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털이 빠져 못생기고 꼬질꼬질하다해도 늘 생각난다. 다른 강아지가 더 예쁜데도 우리 강아지가 더 좋은 거다. 이건 우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건데,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자주 얘기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단다. 어느 햇살 좋은 날 그 따뜻한 흙빛의 눈과 마주하고, 밀빛 털을 가진 강아지의 뒷통수를 쓰다듬다 같이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 마주한 두 눈을 보고 그 순간 나는 어쩌면 이런 게 사랑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했다. 안도했다, 바보같이.


사진3.jpg

 
  사랑에도 센서같은 것이 있다면 나는 혹시 내 센서만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걱정은 좀 된다. 자잘하면 접촉불량 혹은 배터리의 문제고 크면 기기 자체의 결함일 수도 있다. 안다. 답이 없는 것. 결국 마음이 하는 일인 것도 안다.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뒤늦게서야 혹시 내가 이래서 이랬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스쳐지나가 봐야 알게 되려나. 정말 아니다 싶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한 줄 두 줄 늘어만 가는데. 마음이 맞는 것 같았던 사람과는 그렇게 결국 그 길목에서 흩어져 버리는데. 그리고 좋아하거나 사랑이 아니어도 누군가와 멀어지고 잃어버리는 게 이렇게 힘들고 마음 아픈데.  이토록 어려운 사랑이란 것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가. 변두리만 돌고 있는 나의 센서. 내 센서는 뭘 잘 몰라서 둔한 걸까, 뭔가가 너무나 두려운 걸까.


[장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