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 이후 남겨진 삶에 관하여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2.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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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by the Sea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땐 어떤 내용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영화 제목을 짓는 많은 방식들 중 가장 무난하고도 재미없는 방법이 영화의 배경을 제목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다 옆 맨체스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정도만 상상하고선 영화관에 앉았다.

  이 영화는 배우 맷 데이먼이 제작에 참여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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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는 간단하다. 가족을 모두 잃고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가 형의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 겪는 일들을 담백하게 담아낸 영화다. 제목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인 이유는 그의 형이 살던 지역인 맨체스터로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주는 곳이기에 이 영화의 제목에 '맨체스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리가 과거에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잃은 리가 형마저도 잃었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꽤나 진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아픔을 평범한 신파극처럼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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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의 표정은 시종일관 차갑다. 그는 의욕을 지닌 사람같다기 보다는, 세상 모든 일에 달관한 듯한 표정이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와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마저 극도로 꺼린다. 이러한 리의 일상은 그가 삶을 버텨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좀먹는 우울과 슬픔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에게 분노와 표출은 사치처럼 느껴졌던 탓일까. 그는 자신의 습하고 무거운 일상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보인다.

  따라서 가족을 잃은 슬픔 위에 더해진 형의 죽음이 그에게 달가울리 없다. 리에게 주어진 형의 재산과 유언 문제, 그리고 형의 아들인 패트릭과의 문제 등이 그에게는 버거울 뿐이다. 리는 형의 슬픔을 곱씹어볼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현실에 부딪히고, 또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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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의 조카인 패트릭 또한 현실감있는 캐릭터였다. 고등학생인 패트릭은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나서도 바로 여자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밴드부 연습에 골몰한다. 그런 패트릭이 가끔씩 아빠의 죽음을 체감할 때마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려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죽음 이후 남겨진 패트릭과 리 모두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는 대신,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죽음은 타인의 죽음일 뿐, 그들에게는 이어가야 할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패트릭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리가 자신의 후견인이 되어 이사가는 것을 거부하고, 리 또한 금전적인 문제들로 인해 패트릭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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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각본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이러한 현실적인 내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슬픔을 눌러 담아온 냉혈한처럼 보이는 리가 가끔씩 술을 마시고 아무에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아빠의 죽음 이후에도 친구들과의 관계에 온 힘을 다 할 수밖에 없는 패트릭도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더욱 씁쓸했다.

  많은 영화들이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달랐다. 결국 자신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리가 맨체스터를 떠나야겠다고 이야기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 아픔을 묵묵히 감내해내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영화가 바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였다.

  
[이영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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