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차는 왜 계속 달려야 하는가 - 연극 소나기 마차 리뷰

글 입력 2017.02.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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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났던 작품은 독특하고 실험적인 경향이 강했다. 유독 그런 작품들을 골라 본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억이 남아있기에 이번 연극도 기대감이 가득했다. 소나기 마차는 조금 낯선 얘기를 들려주려는 것 같았다. 연극 속의 연극, 연극인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 연극이란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하며,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우리는 어떤 마음의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연극인에게 있어서도 그렇지만, 연극을 관람하는 관람객들도 한번쯤은 천천히 되새겨보아야 할 이야기다. 그래, 소나기를 뚫고 마차가 달린다고 했다. 결국 길 위에 끝까지 남게 되는 것은 소나기일까, 마차일까?

연극이 시작되면, 세기말의 모습이 보인다. 세상은 점차 소나기에 잠식당하고 있다. 소나기가 언젠가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열심히, 온 세상과 사람을 녹여내리고 있을 뿐. 소나기 마차의 단원들은 소나기를 멎게 하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이야기가 그치면 소나기가 온다. 그래서 단원들은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끔찍한 소나기가 온 세상을 녹여버리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단원들은 점점 지치고 만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다. 계속 반복될 뿐인 나날들. 소나기를 피해 다른 마을로 향하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소나기가 내려 모든 것을 어그러뜨리면, 다시 다른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계속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소나기는 진실인 듯 거짓인 듯 모호한 이야기로 풀어진다. 때로는 우습게 포장된 소나기, 때로는 동화처럼 변주된 소나기를 계속해서 노래하지만 소나기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친 단원들은 소나기의 이야기를 포기한다. 결국 웃음을 위한 이야기를, 아니, 이야기도 아닌 것들을 마구잡이로 풀어나기 시작한다. 한 번 소모되고 말 뿐인 웃음, 그리고 그 웃음과 함께 소모되고 마는 단원들. 각자의 꿈과 현실, 그리고 절망이 계속 교차하면서 단원들은 미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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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세계관과 묵직하게 다가오는 상징. 하지만 사실 더 깊은 서술과 묘사를 기대했었기에 조금 실망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소나기, 단원들, 그리고 그들의 대화와 그 존재 자체가 지나치게 직설적인 느낌이었다. 어색함과 기괴함을 조장한 듯한 특유의 분위기는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에 단장 퍼그의 행보와, 세상의 진실과 이야기 자체에 대한 전개를 따라가기 힘들기도 했다. 왜 이야기가 소나기를 멈추게 하는지, 단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머리 한 켠으로 이해할 뿐. 연출과 연기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무대를 꽉 채운 배경,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자전거, 단원들의 생동감 넘치는 몸짓, 어지러이 흩어지는 불빛. 정말 소나기 마차에 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맘모스 해동에서 오민석 배우님의 연기가 인상깊었는데 소나기 마차에서도 그 때 느꼈던 기묘한 소름을 느꼈다.

같은 마차에 타고 있지만 각자 바라는 바가 다르고 행동하는 바가 다르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다. 단장 퍼그는 계속해서 세상의 진실에 대해 논하고자 하지만, 과열된 욕망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를 낳게 한다, 부단장인 애꾸는 마음에 품은 꿈과 자기 자신의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다른 단원들은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몸을 내던지기도 하다 파멸에 이른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소나기 마차를 달리게 하는 것은 의외의 두 여인이었다. 사창가에서 온 여인 제인과, 소나기에 맞아 몸이 문드러지고 있는 루비. 사람들의 시체 사이에서 일어나 마차 위에 다시 올라탄 두 사람의 모습,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제인이 그랬다. 소나기에 맞아 사라져간 마을의 이야기,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 그냥 우리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되는 것이냐고.

소나기는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숨을 마시고, 내뱉고, 공기가 움직이고, 바람이 분다. 그 작은 바람이 일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조용히 맴돌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문득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늘 그렇듯 그 사이에서 살아가고, 비 멎은 하늘은 내일의 비를 약속하며 잠잠해진다. 소나기는 그치지 않는다. 소나기니까. 다만 그래서 마차도 그치지 않는다. 소나기가 있기에 마차가 달리고, 마차가 달리기에 우리는 소나기를 느낀다. 세상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서성이는 풍경. 소나기 마차는 단지 그 풍경을 보여줄 따름이다. 덤덤한 슬픔으로.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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