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혼을 졸업하는 사람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2.2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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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국내 한 연예인이 ‘졸혼’을 했다고 밝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나는 기사를 통해 졸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였다. 스기야마 유미코라는 일본 소설가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내면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부부가 혼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이혼과는 다르게 법적인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별거’와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명분 상 이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지 졸혼이라는 말을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겨 졸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실제 국내에서 졸혼을 한 부부들의 사례를 찾아보았다.

 결혼생활이 40년째인 한 여성은 얼마 전 환갑을 맞아 졸혼을 하였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40년을 가정과 자식을 위해 살았다. 이제 자식은 다 컸으니 남은 인생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쓰고 싶다. 졸혼을 한 이후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예를 하면서 지내고, 작업실 겸 거처도 따로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남편과 만나 평소처럼 지낸다.

 이 사례는 일반적인 결혼 생활, 부부의 모습을 벗어난, 그들만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기야마 유미코가 말하는 ‘졸혼’에 해당될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몇십 년 전부터 황혼 이혼이 화두였다. 이러한 사실을 근근히 접하면서도 아직 우리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우리나라 50대 이상 황혼이혼율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남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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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했기에, 잠시나마 미래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보았다. 평균 수명이 늘고, 은퇴 후에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은 점이 많을 것 같다. 같이 여행도 가고, 여가 생활도 즐기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같이 부대끼며 사는 가족과도 학교에, 직장에, 꽤 많은 시간을 떨어져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같이 밥을 먹고, TV를 보고, 대화를 나눈다. 이럴 때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다가도, 어쩌다 며칠 쉬며 집에 있다보면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있고, 사소한 일에 언쟁이 생기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부부 사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까운 사이인만큼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시간, 자유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자식들을 다 키워냈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졸혼의 사례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유’와 ‘배려’가 기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부부라는 명분으로 구속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이를 통해 남은 삶을 어떠한 의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졸혼의 목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거리를 두는 것이기에 이혼이나 별거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백세 시대가 되면서 ‘제 2의 인생’, ‘인생은 50부터’와 같은 말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졸혼은 이와 잘 부합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졸혼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졸혼이 꼭 나쁘다, 좋다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과 배경,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황혼이혼이라는 말로 오랜 결혼 생활을 끝내고 각자의 길로 헤어지는 것보다는 졸혼이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계속 유지되면서도 각자가 원하는 삶,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결혼하는 부부들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라고 말해주고는 했었는데, 미래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라”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송송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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