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정의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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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서핑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힙'이다. 문맥상 이 단어는 '핫하지만 완전히 주류는 아닌' 느낌을 말하는 것 같다. 홍대의 명소 ‘였던’ 은하수 다방, 또 한 때 많이 보였던 스케이트 보더들, 그리고 재작년 무한도전 가요제 이후 많은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혁오밴드와 그들의 스타일링을 떠올려보자. 혹시 이 세 가지 사례들에게서 무언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 몇몇이 떠오른다면, '힙'이라는 것을 절반정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힙’한 것들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힙스터’라고 하는데, 1940년대 미국의 은어로 등장했지만, 최근엔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찾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날 힙스터들은 아메리칸 어패럴 옷을 입고 픽시 자전거를 타거나, 아이폰으로 직접 만든 샐러드를 킨포크 잡지 옆에 두고 인증샷을 찍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테니스 스커트는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멋지게 자전거 라이딩을 하며, 대다수의 카페에서 킨포크지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힙스터들은 이미 이 유행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힙스터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문화가 주류로 떠오르면,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까 언급했던 사례를 다시 끌어오면, 은하수 다방이 관광 명소가 되고 혁오의 스타일링을 따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결국 이 힙했던 것들은 더 이상 힙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를 추구했던 이 트렌드가 결국엔 주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정말로 힙한 것들은 아직 힙하다고 명명되지 않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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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더 돕기 위해 힙스터인 힙돌씨의 하루를 구경해보자. 늦은 아침에 일어난 힙돌씨는 밤새 맥주를 마시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브런치는 씨리얼과 크랜베리, 자몽을 얹은 유기농 요거트. 인스타그램에 브런치사진을 올려주고,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를 연출하기 위해 왁스를 바른 뒤, 자전거를 타고 밖을 나선다. 망원동으로 향한 힙돌 씨는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신다. 채도 낮게 보정한 커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혹여나 스트릿패션에 찍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망원동 길거리를 걷는다. 힙돌씨는 요즘 아이돌 음악도 듣는다. 아이돌 음악을 비판하는 건 너무 힙한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펍에 들어간 힙돌 씨는 친구를 만난다. 힙돌 씨의 차림새를 본 친구는 “야 ~ 너 정말 힙스터같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힙스터같다는 말에 상처받은 힙돌 씨는 인스타그램에 관계의 무의미성에 대한 글을 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힙돌씨는 왜 이러는 걸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힙돌씨를 비롯한 힙스터들은 획일화된 주류문화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저항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구별짓기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힙스터가 인스타그램에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를 즐기고 있는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올린다.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건 전시가 아니라, 힙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즐기는, 남과 다른 자신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힙스터들이 주류에 저항하여 남과 다른, 최신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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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힙스터와 혼동되는 히피는 획일화된 산업사회나 기성세대 주류 가치관을 거부한 저항정신을 기반으로 하지만, 힙스터는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자체의 소비를 기반으로 한다. 남들과 다름을 내세우면서 결국 다 똑같은 유행을 따라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저항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사회적으로 SNS가 확산되면서 힙스터의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더욱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멋지게 보이게 해줄 물건 또는 행위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SNS가 어쩌면 하위문화로만 남았을 힙스터 트렌드를 주류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SNS를 통해 빠르게 취향이 공유되어 쿨해 보이는 이러한 힙 문화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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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본 또한 이 트렌드에 몰려든다. 힙돌씨가 예전에는 홍대에, 그 다음은 경리단길에서 놀았지만 이제는 망원에서 비엔나 커피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홍대에 힙한 냄새를 맡은 거대 자본이 그곳을 더 이상 힙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힙스터들이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음식점이 소소하게 모여있는 지역에서 놀고 있는데, 이 지역이 입소문을 타 지역 특성을 형성하고, 점점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그러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많이 유입되고, 임대료가 급상승해 본래의 예술가와 자영업자들은 쫓겨나서 결국 지역 특성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이색적인 공간이었던 가로수길은 현재 여러 SPA 브랜드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은하수 다방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힙스터들은 기존의 이미지가 사라진 이 지역들에 있을 이유가 없어 또 새로운 지역을 찾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힙이라는 것이 특정한 양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렌드를 비웃고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결국엔 또 다른 트렌드를 주도하는 양상은 꾸준할 것으로 생각된다. 힙스터 트렌드가 진정성 없이 새로운 것만 찾으며, 오히려 유행을 따르는 것이라고 조롱받기도 하지만, 획일화된 주류를 거부하고 그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을 찾아 나서는 행위 자체는 문화의 다양성에 충분히 기여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구글이미지, Fran Polito via GETTY IMAGES
참조 :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4071320407293366
[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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