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취기를 질투하며

글 입력 2017.02.22 16: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늘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샤를르 보들레르의 [취하라]라는 시이다. 우리들에게는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미생]에서 나온 구절로 더 유명하다. 나를 스스로 깎아먹지 않기 위해서 취하라고 말하는 이 말은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대책 없이 들릴 수도 있다. 깨지 말고 취하라. 취기가 감소되거든 자연에게 몇시인지 물어보아라. 이제 취할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신 차리고 살아도 바쁜 이 와중에 무엇에, 어떻게 취하라는 것인가. 보들레르는 우리의 이런 불평을 듣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취해라.png
샤를르 보들레르의 [취하라] 중 한 구절 / 드라마 [미생]


  그는 예상했는지 시 안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해놓았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하지만 정확한 지침이 아니라서 이 대답 또한 대책이 없다. 애초에 취한 자에게 대책을 물어보는 것은 무리수이지 않을까. 취할 것을 찾고, 어떻게든 취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취하라고 말하고 다니는 보들레르에게 대신 찾아달라고 하면, 그 취기 때문에 이상한 것을 골라줄지도 모른다.

  시 창작 수업에 들어가면, 강사는 여러 가지 말을 한다. 관찰을 하세요. 현상을 보고 메모해보세요. 궁금증을 가지세요. 무엇과 연관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모든 말들은 한 가지의 사전작업을 기본으로 두고 시작한다. ‘감정을 이입하세요.’ 개인의 감정을. 항상 가슴 속에다가 두고 있는 감정을 불러와서 이입시키라는 소리다.

재심.jpg
 영화 [재심] 중 한 컷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베테랑 배우들의 감정 이입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서울 정도다. 주인공에게 동화되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배우,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울음을 멈추지 못해 흐느끼는 배우. 우리는 스크린에서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들의 본명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화와 드라마, 연극에서 맡은 캐릭터에 이입한다. 이건 배우가 먼저 그 캐릭터에 충분히 이입하지 못하면 이뤄지지 못하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특정화된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일단 그 감정에 몰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씀2.jpg씀.jpg
 앱 ["씀"]
 

  [“씀”]이라는 핸드폰 앱이 있다. 필명을 만든 뒤, 아침과 저녁마다 단 한 개씩의 키워드를 던져줄 테니 메모를 하라는 단순한 구조의 앱이다. 사용하기가 간편해서 몇 만 명의 가입자가 있고, 한 개의 키워드마다 적게는 수백, 많으면 수천의 메모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그런데 메모들을 잘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발견된다. 아무리 키워드가 바뀌고 있어도 각 유저들의 글 분위기는 일관되어있다. 
  실연당한 사람인지 모를 사람은 어떤 키워드를 줘도 애처롭고 슬프다. 연애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긍정적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단어에 대한 근본적인 원뜻을 파헤치려고 하고, 화가 난 사람은 모든 단어들이 나 자신의 무기이자, 자신을 위협하는 무기다. 이들에게 ‘돌멩이’를 줬다가는, 누군가는 돌멩이를 찼고, 누군가는 주웠으며, 누군가는 구성성분을 보고, 누구는 던진다. 멀쩡히 기분 좋은 글들을 쓰던 유저의 메모들이 갑자기 변화되어있으면 어떤 큰 일이 일어났을거라 짐작이 가능하다.
  이는 시와 모습이 비슷하다. 나의 담당교수도 상담시간 때 말한 적이 있었다. 어떤 한 감정에 항시 젖어 있으면 잠시 스쳐지나가는 바람도, 나무도, 그 무엇도 시가 될 수 있다고. 보들레르가 이 시대 사람이었다면 내 교수와 절친이 되었을 것이다. 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니까.

  감성이 메말랐다고 말하는 현대지만 아직까지도 감성은 살아있다. 다만 이제는 그 감성들이 심야의 페이스북으로 옮겨가고, 블로그로 옮겨가고, 카카오톡 상태메시지, 모씨, 어라운드, 씀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이성을 차리며 심야감성이 위험하다고들 말한다. 다시 말해 감성은 살아있지만, 감성이 천대받는 시대다.
  사람이 상대방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이 14초 미만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감성적인 동물이다. 감성이 발현되고 나서 이성이 발휘하는 것인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성을 죽여야 한다고들 하며 낮에 모든 이성을 써버리고 감정을 죽여 놓으니 밤에는 모두 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감성은 인간을 움직임을 조절하는 원초적 동기부여다. 우울한 감성들은 움직임을 제한시켜버리겠지만, 긍정적 감성들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가수 싸이는 노래가사에서 말한다.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을 못 이기고, 즐기는 놈은 미친놈을 못 이긴다. 이는 가볍게 멋진 말이라고 넘겨 들을 수도 있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감정적 기반이 어떤가에 따라서 성취도마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jpg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 포토샵 편집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감성에 취하라. 당신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감성을 찾아라. ‘외로움’이나 ‘고독’, ‘분노’같은 말이라고 부정적이 될 수는 없다. 당신에게 그게 필요하다면 마시고 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밤하늘에 수놓인 별빛들처럼, 온전히 저마다의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신명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