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크게 보면 진가가 드러나는 연극 소나기마차

글 입력 2017.02.2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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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소나기마차>의 무대는 간략했다. 속이 보이는 검은색 장막이 쳐진 마차, 그 앞에 자전거로 만들어진 말들, 그 뒤로는 알 수 없는 건물의 뼈대들. 하지만 단순한 무대에서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심오했고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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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아트센터


 극의 구성은 어렵지 않았다. 소나기마차의 단장 퍼그와 창녀 제인, 단원 애꾸, 루비, 멸치, 다다는 세상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소나기를 피해 헝겊을 뒤집어쓰고 달리고 달리다 마을에 도착하면 소나기 이야기를 한다. 소나기 이야기를 해야만, 그리고 그걸 들어야만 소나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 마을은 또 소나기에 녹아버리고 마차는 또 다른 마을에 가서 소나기 이야기를 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단장과 단원들은 갈등에 빠진다. 왜 이야기를 해도 소나기를 피할 수 없는 거지? 이야기를 하면 소나기를 피할 수 있긴 한 건가? 매일을 굶주림과 피곤함에 허덕이던 그들은 계속해서 소나기 이야기를 하자고 주장하는 퍼그의 뜻과 달리 단순한 흥밋거리 위주로 공연하기 시작한다. 종래에 소나기마차를 이끌게 된 제인과 루비는 소나기로 인해 사라진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이야기하기로 다짐한다.





 프리뷰를 작성하면서 이미 연극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갔기 때문인지 극에 담긴 메시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당일에 극장에서 공연을 바로 접했다면, 개인적으론 공감하기가 좀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나기마차 단장 퍼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나기라는 존재,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할 수 있었다.  허나 극에서 퍼그가 하는 소나기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 않았고 그가 단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가 아이들을 죽여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았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극은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부조화로 가득했고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보기엔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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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극의 전개와 인물들 개개인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극 전체를 크게 놓고 봤을 때 비로소 <소나기마차>의 진가가 드러난다. 
 소나기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은 최후의 날까지 따듯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만 결국 소나기에 맞아 녹아 사라진다. 하지만 소나기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소나기마차 단원들은 지치고 힘들고 배고팠으나 어쨌든 살아남는다. 그러다 그들이 소나기 이야기를 멈추자, 단원들은 결국 갈등의 골에 빠져 자멸하고 만다. 이러한 <소나기마차>의 큰 그림은 오늘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린다.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우리는 수많은 위협에 둘러싸여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여러 폐단과 문제점들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즐길 거리들에 팔려있는 동안 우리가 열심히 벌어 낸 세금이 줄줄 새고 있었고, 우리의 기회가 빼앗기고 있었고, 때로는 생명까지도 잠식당했다. 그동안 꾸준히 그 위협에 대해 경계하고 이야기했다면, 소나기를 모르는 체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몇 주 내내 광화문에 서있는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어여쁜 아이들을 묻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야기 하는 건 쉽진 않지만, 소나기마차 단원들처럼 지쳤겠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결과, 소나기를 외면한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 자멸이 아닌가.

 분명 연극 <소나기마차>는 재밌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연극은 아니다. 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이 아무런 의식 없이 즐기기만 하는 그런 행위니까 말이다. 보다보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뭘 얘기하고 싶은 걸까, 뜬금없고, 어울리지 않고, 조금은 과장스럽고. 하지만 그런 우스꽝스러운 난해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끝에서 나를 만날 수 있는 깊이 있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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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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