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게 산다는 건 대체 뭘까?

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
글 입력 2017.02.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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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수많은 에이프릴 혹은 프랭크에게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동안 당신은 아마 자신의 삶을 주욱 돌이켜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래, 이게 아니지.”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겠다는 결심을 할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한 시간, 혹은 하루정도 ‘의미 있게 사는 것’에 대해 고심하고는 다음날 아침이 되면 출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그런 당신을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 안에서의 어떤 역할에든 공감하고 마음이 시렸다면, 한번쯤은 현실 속에 파묻혀있던 과거의 꿈을 되돌아보고 내 삶의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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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mean how you make money. I mean, what're you interested in?”
 돈 버는 일 말고요. 내말은 당신 관심사가 뭐냐고요.
“Honey, if I had the answer to that one, I bet I'd bore us both to death in half an hour.”
 내가 그 물음에 답하면 우리 둘 다 지루해서 30분 안에 죽을 거예요.
  영화는 195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중산층 남녀를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첫눈에 반해 결혼했고, 뉴욕의 외곽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한 주택에 정착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대한’ 휠러 부부였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을 괴롭혔다.
 결국 에이프릴이 연극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싸움이 터지고야 만다. 프랭크는 이런 시골에서 변두리의 무딘 남편역할(dumb,insensitive, suburban husband) 노릇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며 에이프릴을 윽박지른다. 이에 에이프릴은 남자답지 못하고 어린애 같다는 말로 받아친다. 한바탕 싸운 뒤 프랭크는 직장에서 만난 여자와 잠자리를 가짐으로써 남자다움을 증명하려하고, 에이프릴은 홀로 집에 남아 우연히 발견한 옛 사진을 보며 프랭크의 옛 꿈을 떠올린다.

# 과연 어떤 것이 비현실적인가
“All I know, April, is I want to feel things. Really feel them, you know.”
 에이프릴 나는 모든 것을 느끼며 살고 싶어. 온전히 만끽하면서 말야.
  과거의 프랭크는 자유분방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실제로 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떠올리며 에이프릴은 파리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후에 집으로 돌아온 프랭크를 위해 그의 서른 번째 생일파티를 해주면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프랭크는 정착했던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자는 에이프릴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며 주저한다. 에이프릴은 프랭크를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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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Frank. This is what's unrealistic. It's unrealistic for man with a fine mind to go on working. Year after year at a job he can't stand, coming home to a place he can't stand, to a wife who's equally unable to stand the same things.”
아뇨, 여보. 이게 비현실적이죠. 당신같이 멋진 사람이 적성에 안맞는 일을 억지로 하며 이런 곳에 사는 것. 나 역시 이런 생활 싫어요.
“Do you want to know the worst part?”
제일 끔찍한게 뭔지 알아요?
“Our whole existence here is based on this great premise that we're special and superior to the whole thing.”
이곳 사람들보다 우월한척 위선을 떨며 사는 거예요.
“But we're not. We're just like everyone else. Look at us. We've bought into the same ridiculous delusion. This idea that you have to resign from life and settle down the moment you have children. And we've been punishing each other for it..”
그런데 우리 특별하지 않잖아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우리도 애 생기면 인생 끝이라는 어리석은 통념에 결국 굴복했잖아요. 그리곤 서로를 원망했죠.
“When I first met you, there was nothing in the world you couldn't do or be.”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꿈이 컸어요.
“It's what you are that's being stifled. It's what you are that's being denied and denied in this kind of life.”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이런 생활 속에서 질식당하고 있어요.
“Don't you know? You're the most beautiful and wonderful thing in the world. you're a man.”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존재에요. 진짜 남자죠.
 결국 이들은 파리 이민을 결심한다. 휠러 부부의 이런 결정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통념을 깬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 탓일 것이다. 그러나 휠러 부부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울음을 터뜨린 밀리를 통해 이들 역시 마음 깊은 곳에는 비슷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임을 짐작 수 있었다.
 이들의 꿈을 알게 된 또 한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부동산 중개인의 아들 존이다. 존은 심경쇠약 증세로 정신병원 치료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만은 이들의 계획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에 에이프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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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being crazy means living life as if it matters, then I don't care if we are completly insane.”
 의미있게 사는게 미친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요.
라는 말을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비정상의 눈으로 바라본 정상은 과연 정상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현실에 덮친 현실
 파리 이민에 대한 기대와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에이프릴은 임신을 했고, 프랭크는 승진의 기회를 얻는다. 프랭크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본 에이프릴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 나는 누구로 살고 있는가?
 에이프릴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나고자 한다. 그러던 중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낙태기구를 사놓은 것을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화를 낸다.

낙태기구를발견하고싸우는부부.jpg
“April, a normal woman, a normal sane mother doesn't buy a piece of runber tubing to give herself an abortion.”
 에이프릴, 평범한 여자라면, 정신이 온전한 엄마라면 꿈꿔온 환상을 실현해보겠다고 낙태기구 따위를 사는 짓은 안 해!
 낙태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에 대해 에이프릴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프랭크의 이 대사에는 엄청난 폭력이 묻어있다. 여전히 질문한다. 과연 ‘평범한’, ‘정신이 온전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나아가 엄마로서의 삶이 여자로서의 삶, 자신으로서의 삶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가?

#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영화이자 현실
 전적으로 프랭크의 편에 설 수도, 에이프릴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을 듯하다. 누가 정상이고, 어떤 생각이 비현실적인지 감히 정의내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누가 맞고 틀리고 보다는 굉장히 아픈 여운을 주는 비극적인 결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온전히 만끽하며’ 살고 싶어 하던 남자가 인생에 있어서의 선택을 재고관리의 원칙에 기대어 결정하기까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해 미쳐도 좋다는 그녀가 ‘의미 있는 것’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를 망치기까지. 러닝타임 118분 동안 쉬지 않고 쏟아낸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살 것인가를 고심해보게 하는 영화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중개인 헬렌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휠러 부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다. 휠러 부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한없이 친절한 이웃으로 비춰졌지만 결국 그 속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보다 진한 씁쓸함이 느껴졌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 혁명적인 길에 대해 평론가 이용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집 앞에 있었지만, 그도 그녀도 걷지 못한 길”. 충격적일만큼 역설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김현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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