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객도 무당이어야만 했던 연극- 연극 동이

글 입력 2017.02.22 03: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관객도
무당이어야만 했던
연극, 동이


포스터_최종.jpg
 

“무당의, 무당에 의한, 무당을 위한 연극”


제가 연극 동이를 보기 전, 사전조사를 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무당의 이야기를 담았고, 무당에 의해 연출 된 연극이었으며 또 이 땅의 무당들의 비애를 알리기 위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극 동이를 설명하자면 ‘무당’이란 말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래도 연극인 이상 그 안에 관객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은 연극을 이루는 필수요소니 말입니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나온 후 느낀 감상은 연극 동이에 ‘관객’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이에선 관객조차도 무당이었습니다. 아니, 무당이어야 했습니다. 이 연극은 관객이 아닌, 무당이신 연출가분과 그 주변분들만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시작되기도 전부터 최악이었던 연극.

전에 없는 혹평을 하는 이유는 연극을 관람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것에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은 ‘경험’입니다. 특히나 연극은요. 단순히 그 컨텐츠와 한 개인이 존재해 온전히 컨텐츠만을 감상할 수는 없습니다. 방에서 혼자 감상하더라도 그 당시 감상자의 컨디션이나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죠. 영화관이나, 극장, 전시회장에 가서 보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컨텐츠를 보러가는 여정과 가서 겪는 모든 일들이 그 컨텐츠에 관한 경험으로 남게 되죠. 그렇기에 저는 연극을 볼 때 제작진의 태도나, 주변의 관극매너, 공연장 분위기에 꽤 많은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에게는 연극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쳤을 때 제게 동이의 연극은 최악이었습니다. 연극 퀄리티가 최악은 아니었지만, 관극경험까지 통튼 연극에 대한 감상으로서는 정말이지 최악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연극 시작 전 연출분이 보여줬던 태도 떄문이었습니다.

연극 시작 약 3분여 전. 자리에 착석해 극이 시작되길 기다리던 저는 귀를 의심해야했습니다. 
저는 사전조사를 했기에 연출가분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분이 큰 소리로, 똑똑히 외치신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대표! 우리 5분만 늦게 시작하자.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거의 다 왔대." 결국 연극은 제시간에서 약 7분쯤 늦게 시작했습니다. 

연극 시작 시간은 관객과의 약속입니다. 물론 모든 약속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키지 못할 때도 있죠. 하지만 이번 일은 ‘결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이엔 10분쯤 지연 입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원래라면 그때 입장하셨어야 하는 거죠. 아마 지인이 아닌 다른 관객이었으면 그때 입장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맞습니다. 극 제작자와 어떤 관계든, 연극에선 모든 관객이 평등하니까요. 하지만 연출분은 그 늦는 몇 관객, 자신의 지인분들을 ‘특별’ 취급하셨고 그를 위해 이미 자리에 앉아있던 40여명의 관객과의 약속을 저버리셨습니다. 그분들을 기다려야 했던 5분간 나머지 관객들은 그분들을 위한 들러리가 됐던 거죠. 

만약 지인분들께 극을 보여드리는 것이 그 공연의 목적이었다면 일반 관객은 들여서는 안됐던 겁니다. 귀한 시간을 내서, 또 돈을 내고 그 자리에 앉아계시던 관객분들은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됐습니다. 지인 때문에 딜레이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저는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실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그걸 객석에서 그렇게 크게 말씀하셔서는 안됐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늦게 시작하는’ ‘연극’을 기다렸을 다른 관객들은 ‘연출분의 의지로’ ‘그 늦는 지인분들’을 기다리게 됐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겪으며 연출분께서 생각하시는 관객은 어떤 존재일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관객에 대한 연출분의 인식이 의심가게 하는 사건은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그 지인분들 무리가 착석하고 대표님이 나오셔서 연극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대표님이 이제 연극이 시작한다며 인사하고 퇴장하시려 할 때. 이제 곧 시작 될 연극을 기다리는 그 순간. 연극을 향한 기대감으로 묘한 긴장이 도는 그 순간에, 연출분은 대표님을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대표, 왜 방송이 안 나와?” 그러니 옆에 스태프가 뛰어와서 뭐라고 속삭이더군요. 

제게 있어서 연극 시작 전 미묘한 정적은, 또 그 긴장감은 연극의 일부입니다. 연출분이 망치신 그 순간 말입니다. 그 순간에 큰 소리로 대표님을 부르신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더욱 이해가지 않던 건 그 내용이었습니다. 

관객은 연극 프로세스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나 방송과도 같은 기술적인 측면은요. 만약 관객들에게도 알려야 할 만큼 크게 잘못됐다면 공지를 해야하며, 정식으로 사과해야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관객들은 연극의 과실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습니다. 최소한 그런 식으로 연극이 시작 된 후, 대표님을 부르는 방식으로는요. 물론 연극의 진행과정을 모두 짜고 신경써야하는 연출 입장에선 거슬릴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런 의문은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없는 자리에서 풀었어도 됐습니다. 완성도 있는 연극을 하고싶다는 본인의 욕심에 관객은 ‘무언가 잘못된’ 연극을 보게 됐으니 말입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저는 실제 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최악의 관극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시작도 전에, 저는 이미 이 연극의 관객이 아닌 들러리가 된 기분을 맛보았으니 말입니다. 


2017-01-23 23;46;59.PNG
 

‘굿’의 ‘굿’에 의한 ‘굿’을 위한 연극

불쾌한 감정을 안고 관람하기 시작한 연극은, 그 감정 탓인지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정신병, 선영의 죽음을 모두 ‘신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특히나 어머니, 아버지의 건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기에 납득이 갔지만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전개된 선영의 죽음 또한 ‘신 때문’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선영의 죽음 이후 동이의 감정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영의 죽음 후에도 극도로 신을 거부하던 동이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얌전해집니다. 혹자는 이를 보고 운명에 순응했다고 표현할지도 몰라도, 글쎄요. 연극 동이에선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생략하고, 받아들인 후를 보여줍니다.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인물의 감정변화는 공감보단 의문만을 남겼습니다.

수많은 생략으로 감정에 동화되지 못하고, 붕 떠있는 상태에서 강요되는 눈물은 불쾌감만을 낳았습니다. 원래에도 대놓고 울라고 판을 깔아주는 듯한, 눈물을 짜내기 위한 장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이 감정의 동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것은 곤욕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극의 가장 큰 주제의식과 관련 된 장면 같았던, 동이의 신내림굿 중 어머니와 부여잡고 우는 장면에서 저는 점점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장면이 길어질수록 더더욱이요. 그렇게 저는 ‘동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선 극에서 말하고자 했던 ‘무당의 슬픔’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런 부분을 느꼈던 것은, 개그코드로 등장했던 무당들에게서 였습니다. 마냥 밝게 웃다가도 이내 서러워지는. 남편에게 그렇게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남편이 자신 때문에 잘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눈물찍는 기성 무당들의 모습이. 차라리 무당이 평생을 지고 가야하는 업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괜찮게 봤던 것은 선영이 죽고나서 쑥대머리에 맞춰서 췄던 춤이나, 내림굿 장면이었습니다. 워낙에 동양적인 선을 좋아하는 지라, 하얀 옷을 입고 슬피 추는 선영의 춤은 꽤나 인상 깊었습니다. 또, 신내림을 받기 위해 배우가 미친 듯이 뛸 때는 실제 굿을 보는 듯 약간의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굿판이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크진 않았고 소규모긴 했지만. 연극 무대에서 그런 장면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기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굿판이 너무 길어지고, 반복되자 처음에 돋았던 소름이나 신선함은 사라지고 지루함만 남았습니다. 동이가 신통력을 얻어가는 과정과 제 흥미도는 반비례했다고 해야할까요. 

 결국 연극 동이를 보고 남은 것은 무당에 대한 이해와 공감보단 ‘굿’이었습니다. 굿을 보여주기 위해서 축소한 감정선은,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굿’에 대한 묘사는. 결국 연극에서 다른 모든 것을 지워내고 ‘굿’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관객

연극 자체에 대해서도 꽤나 혹평을 남기긴 했지만, 만약 조금 더 나은 기분으로 관극했다면 이보다는 긍정적으로 관람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당이 연출하고 쓴 연극, 분명 새롭습니다. 신선한 도전입니다. 하지만 ‘도전’에는 반드시 그 장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극에서의 관객은 결코 지인이나 본인의 만족도를 위한 들러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연출 기술이나, 극작 기술에 대한 습득보다도. 관객에 대한 예의가 가장 먼저 습득되어야 할 듯 싶었습니다.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닙니다. 연극의 필수 구성요소 중 하나입니다. 부디 다음부터는 관객을 고려하고, 존중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와 함께합니다!


[권희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