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베르 카뮈 [오해] 돌아보기 -1 [문학]

서론
글 입력 2017.02.2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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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1.7. ~ 1960.1.4.)


AlberCamus.jpg


  알베르 카뮈는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으로 참전하여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카뮈는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고, 철학 공부를 위해 알제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결국 중퇴했습니다. 대학시절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학교 중퇴 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1940년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였으나, 이후 나이가 들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하게 됩니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면서는 비판적인 논설 게제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으며, 공산주의에 반대하게 된 1950년대에는 <반항적 인간>이라는 책을 발표하고 수많은 프랑스 동료 작가들과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또한 사형제에 반대했으며 인권운동에 매진하였습니다. 1940년대 프랑스 언론인으로서는 드물게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행보를 보면, 매 순간 자신의 의견을 표하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에세이, 논설, 소설. 희곡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썼는데,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글 시리즈의 주제이자, 제가 대학교에서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며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작품인 <오해>도 이런 성격을 띤 부조리극입니다.



2. 작품, <오해-Le Malentendu(1944)>, 알베르 카뮈


leMalentendu.jpg
 
-3막 구성. 1944년 출간/초연.

  체코의 깊은 산골에 어머니와 딸 마르타가 경영하고 있는 여인숙이 있다. 두 사람은 돈이 많은 숙박객이 들면 수면제를 먹인 후 죽여 버리고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아 버린다. 바다와 태양을 그리는 마르타는 남쪽 태양의 나라로 이사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그곳에 20년 전에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놀라게 해주려고 신분을 밝히지 않고 투숙한다. 이를 몰랐던 그녀들은 계획대로 그를 죽였으나, 후에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기들도 자살해 버린다. 그리스 비극의 숙명을 밑바닥에 깔고 신의 부재(不在)와 인간의 낙원 추방을 그린 걸작이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이야기가 너무 비극적이라고 생각했고, 작품 안의 사회 분위기가 매우 어둡고 음울하다고 느꼈습니다. 작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이 유럽이라는 땅, 지긋지긋한 동네, 칙칙하고 어두운'등의 비유를 보며 유럽에 대한 카뮈의 인식이 부정적인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제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많은 유럽 국가들이 독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기도 한 만큼 당시의 유럽 전반에 이 극과 같은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모습들이 많이 보였을 거라는 짐작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습하면서부터는 당장 외워야 할 대사와, 내가 맡은 배역인 마르타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에 집중하느라 작품에 대해 처음 같은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르타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살고 있었는지 깊이 있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제가 묘사해낸 마르타는 그저 침착한 사이코패스였습니다. 처음 모여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이런저런 각색 아이디어에 흥분하며, 마지막이니만큼 완벽하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작품이 끝나고 되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 무대가 끝나고 1년여 동안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밖 세상에서 지내다보니 더 그랬습니다. 마르타가 그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성정이 무심하고 잔인하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주저 없이 저지르는 게 아닌데, 왜 그 아이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평면적으로만 해석해냈는지 내심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작품을 돌아보며 공부해보려 합니다.

  다음은 <오해>의 서문입니다. 저자의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작품과 그 안의 인물들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오해>는 분명 어두운 연극작품이다. 이 작품은 1943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포위되고 점령된 나라의 한복판에서 씌어졌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유적(流謫)의 색채가 깃들여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절망을 안겨주는 연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을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비극적인 것을 통해서 불행의 모습을 변모시키는 것이다. 로렌스는 말했다. "비극적 형식이란 불행의 엉덩이를 발길로 세게 걷어차는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오해>는 현대의 줄거리 속에다 숙명이라는 고대의 테마들을 새로이 옮겨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 새로운 시도의 성공 여부는 관객들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 비극이 끝났을 때, 이 연극이 숙명에 대한 굴복을 감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반항의 극인 이 작품은 정직함의 윤리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사람이 타인에게 올바르게 인식되기를 바란다면 단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면 사람은 고독하게 죽게 되고 그의 주위의 모든 것은 불행에 빠지고 만다. 그 반대로, 사실을 말한다면 그 역시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만 타인과 자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나서 죽게 되는 것이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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