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름 카메라와 함께, 나의 서울 [여행]
글 입력 2017.02.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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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겹기도 하고, 적응이 되어 편하기도 했다. 무료한 와중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했다. 새로운 곳으로 훌쩍 떠나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었다.그러던 중 나에게 카메라가 한 대 생겼다. 무겁고 손도 많이 가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진관을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귀찮은 필름 카메라였다. 그저 호기심에 사진을 찍고 몇 주 후 사진관에 필름을 맡겼다.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속에는 내가 잊어버린 느낌들이 담겨 있었다. 그건 내가 경험했던 과거를 새롭게 만나는 순간이었다.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 그건 아주 색다른 여행이었고, 그 후로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면 항상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그래서 오늘은 투박한 사진들 속에 담겼던 나의 순간, 나의 서울을 공유한다. 매일 마주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나, 나의 시선들을 함께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아침, 눈을 뜬다. 블라인드 너머로 해가 비친다.널어놓은 빨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인다.블라인드를 걷고 화분에 햇빛을 쬐인다.화분은 이미 반쯤 죽어 있다.항상 같은 지하철을 타러 지하로 향한다.내려가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이 엇갈린다.손잡이는 잡지 않는다.지하철을 타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한강을 건넌다.강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침착하다.물살은 차분한데 다리 위의 차들만이 바쁘게 달리고 있다.익숙한 건물들 사이의 계단을 오른다.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강의실 복도는 새하얗다. 사람이 없는 학교는 적막하다.햇살만 찾아들어 돌다리 같은 모양으로 길을 놓아 주었다.날씨는 제멋대로 우울해진다.오래된 건물은 시계를 품고 여전히 늙고 있다.학교 근처에는자신의 감성을 수놓은 흔적들이 종종 눈에 띄인다.봄이 오면 마른 나뭇가지에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꿈처럼 날아가는 프로펠러와 요트를 지난다.낡은 동네를 걷는다.오래 된 동네에는 골목마다 빛이 스민다.낡아 벗겨진 것들이 보여주는 세월을 좋아한다.오래된 것일수록, 얼마나 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변하지 않는 하늘빛만 무연하다.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넌다.지나치는 다리살은 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한다.햇살이 옅어지면 물빛이 짙어진다.누군가를 태웠을 자전거는 버려졌다.서울은 무정한 건물들의 도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때가 탄 건물이곳곳마다 박혀 있는 도시가 나의 서울이었다.다들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에나의 시간도 덧칠되고 있음을 자각한다.나무들 사이로 해가 떨어진다.어느 날에는 분홍빛인 하늘을 본다.낡은 카메라로는 더 담아내지 못할 만큼날이 까매지기 까지는 금방이다.하염없이 불빛들에 빠져드는 순간들도 있었다.집으로 돌아가기 전,가로등 아래에서 하루를 곱씹는다.찬 바람이 알싸하게 코를 스치고 있었다.돌아온 방에는 마른 꽃이 있었다.[서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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