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소리 없는 언어를 말하다

솔직해지라는 소년과 솔직할 수 없는 여자
글 입력 2017.02.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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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소리 없는 언어를 말하다.


이 영화는 일본의 실제 장소에 영광을 받고 그려진, 그렇기에 더 생생하고 수채화 같은 색채를 보여주는 그림은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비가 오는 날이면 홀로 인적 없는 정자로 와 맥주를 따는 베일에 싸여있는 여자, 유키노. 그리고 우연적으로 같은 비 오는 날 정자에 들르고 제 앞의 여자가 낯설지만은 않아 힐끗 거리는, 일본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두장이를 꿈꾸는 소년 타카오. 그렇게 비가 고요하게 오는 날은 둘의 첫만남을 성사해 준 배경이었다. 이는 ‘비’ 라는 소재가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대단한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암시한다. 서로의 이름과 가족 관계, 거주지, 애인의 유무도 모르지만 둘은 서로에게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나는 걷는 법을 잊어버렸어." "어릴 적에 올려다본 하늘은 지금보다 더 가까웠어." 여자는 어떠한 연유로 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지 않고 도망쳐 정자로 피신을 오는 듯싶었고 소년은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를 늦어가면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여자와 실없는 농담과 도시락의 반찬도 서로 주고받으며 둘은 ‘雨親(우친)’이 되었다. 소년은 점점 초라하고 소박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꿈에 희망을 얻게 되었고 자고 일어나면 창문 밖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으로 받아들였고, 비가 오는 날만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소년은 이렇게 증언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학생인 그와 그를 어린애로만 볼 것이 확실한 성인인 여자와의 격차가 조금이나마 좁혀지는 것만 같아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그리고 비가 오지 않은 날이면 학교로 돌아가는 길과 함께 어린애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소년은 꽤나 솔직했다.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였으며 여자에게 가식 없이 대하였다. 자신의 꿈조차도 털어놓고 상처를 받고 걸어갈 줄 모르는 여자를 위해 구두를 만들어 주려고 결심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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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여자는 솔직하지 못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와 직업, 안고 있는 고민, 이름조차 소년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소년은 여자가 궁금했지만 더는 다가가지 못 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막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밀이 많은 여자. 소년에게는 딱 그 느낌일 것이다. 그는 여자가 자신을 허물 없이 대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지게끔 만든 주된 인물들을 이성이 아닌 감정부터 앞서 불리한 환경에도 꿋꿋이 맞서 싸웠고, 때로는 평범한 청소년 같은 눈빛을 보이는 소년에게서 그 나이에 맞는 때 묵지 않은 순수함과 남자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을 엿볼 수 있다. 소년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속이는 여자는 관객들로부터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여자가 자신의 아픔을 모두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속여 사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여자를 관찰하다 보면 불완전한 어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소년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여자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이 바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는 여자에게 솔직하게 발전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며 따끔한 훈계를 해 주며 여자를 북돋우는 촉매 역할을 한다. 여자의 무감정해진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묻어주고 물을 내려주고 갈대처럼 흔들리게 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더없이 순수한 이 소년일 듯싶다. 그녀가 넘어져 생채기가 났을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준 것도 소년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성인 여자의 대상이 성인 남성이 아니고 어리고 순진하게만 보이는 소년으로 대상을 잡았는지 예상이 간다. 참신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성인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에게 안겨 어설픈 위로를 받고 그로 인해 깊은 감동을 얻게끔 유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의도이자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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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앞에서 언급한 색채이다. 유일하게 비 오는 날만 엿볼 수 있는 기다란 물방울들이 하나하나 웅덩이 위에 떨어져 작은 파동과 동시에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던가 초록 잎사귀 위에 커다란 이슬 한 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 그리고 비가 내리고 갠 말끔한 하늘을 예술로 묘사하였다. 모두 공감할 법한 그림들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 비 오는 날까지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내는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뒤로 가면 갈수록 절정과 영화가 끝맺음의 낌새를 강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 구간에서는 느릿하게 진행되던 전반적인 영화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확연한 증거는 바로 비다. 초반부의 비는 잔잔하고 고요했으며 조심스러웠다. 중반부의 비는 두 사람의 만남을 향연하고 둘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적극적이었고, 후반부 절정에 달해서는 거세고, 과감하고, 굵었다. 둘의 만남을 굵직한 빗방울을 사용해 방해 요소의 느낌을 받게 하면서도 그것이 더욱 관계를 끈끈하게 해 주는 도구였다는 사실을 부각해주었다. 소극적이고 움츠리고만 있던 유키노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변화함으로써 바뀌는 배경음악과 분위기에도 비가 한 몫을 해 주었다. 소년과 상처 난 맨발의 여자가 비가 거세게 퍼붓는 계단에서 서로 껴안을 때의 감동과 더불어 인물 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됨을 축복하는 비를 마음껏 퍼부어주는 장면은 관람객들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준다. 어쩌면 타카오가 남기는 일침이 누군가에게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다는 현실 자각이 관람객들에게 크게 다가올 수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구두장인이라는 꿈을 꾸는 나이 어린 소년일 뿐이지만 배울 게 참 많은 그 덕분에 한 발짝 한 발짝 신고 나아갈 수 있는 신발을 가지게 된 여자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묘사되었기에 우리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 같고 내가 그 동안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였고 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 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는 영화다. 필자가 ‘언어의 정원’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가 오는 날의 끈적하고 습한 느낌 탓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비란 소재를 사람과 사람의 설렘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이 영화가, 서로를 생각하는 주인공 둘이 다른 이들과 달리 비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탓에 다른 년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게 된 배경상의 일본이, 비가 오는 날 만나기로 기약한 둘의 만남이 아름답기에.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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