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는 건 별 거 없다. [시각예술]

Kill Me Darling(2015) - 원제 The Surprise
글 입력 2017.02.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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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Me Darling(2015) - 원제 The Surprise 


사는 건 별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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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더 정확히는 잠자리에 들때 내일 눈을 뜨지 못하게 되어도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삶에 많은 미련이 없으며 내일이 이어지지 않아도 아쉽지 않다. 살아있는 한은 즐거운 것을 추구한다고 해도 내일 죽을 수 있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에게는 인생의 곡선이 두 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피상적인 곡선과 내면 깊이 잠들어 있는 잠재적인 곡선. 이 두 곡선이 분리되어서 존재하기에, 이들은 겉으로는 즐거워보여도 내면 깊은 곳에는 항상 우울이 드리워져있다. 그리고 그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의 인생에는 늘 죽음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심리가 어떤 심리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아는 몇 사람들 중 일부도 이런 류의 성향을 가끔씩 보이는데, 맛있는 것 먹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놀기도 좋아하지만, 내일 죽어도 미련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쓰러우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저 살아있는 한 필요한 것일 뿐, '살아갈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삶에 미련이 없는 걸까? 아니면 큰 마음의 상처로 인해 인생을 살고 싶지 않지만, 죽지 못해 사는 걸까? 항상 죽음을 자신의 가까이에 두는 사람들을 볼 때면 늘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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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느끼겠지만, 인생이란 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항상 설레고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꼭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나를 포함하여) '인생을 사는 이유'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들이 앞서 언급한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저 '죽음'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여기고, '죽는다'는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죽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이다. 나는 아직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나 큰 상처가 있기에 그것이 치유되지  못한 채,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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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Kill Me Darling'은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야콥'이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야콥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감정을 내비친 적이 없는 메마른 사람이다. 그는 늘 죽음을 준비하며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하지만 걸핏하면 사소한 일로 인해 그 시도가 무산된다. 어느 날, 이런 그에게 '엘리시움'이라는 회사가 나타나는데 이 회사는 고객들의 마지막을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식해주는 회사다. 죽음의 날짜와 시간, 구체적인 상황까지 기획해주는 일종의 죽음 컨설팅 회사인 셈이다. 야콥은 이 회사에 자신의 죽음을 의뢰하면서 '서프라이즈'라는 상품을 택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을 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회사에서 직접 예기치 못한 시기에 친절하게 고객을 죽여주는 상품이다. 이 상품을 선택한 야콥은 우연히 같은 상품을 선택한 '안나'라는 다른 고객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죽음을 도와주는 회사. 분명 가볍지 않은 소재가 분명하지만 영화는 굉장히 밝고 경쾌하다. 심지어 보는 동안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데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잘 풀어낸 듯했다. 사실 영화의 초반부터 야콥은 '산다'는 것에 관심은 없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언뜻 언뜻 내비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가 죽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엘리시움을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미루거나 외부의 눈을 피해가며 소심하게 자살시도를 하려다 제풀에 지쳐 그만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라면, 남의 시선, 남의 사정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무튼 야콥은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막상 죽음의 손을 잡을 용기는 없었던 사람이다. 모처럼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죽음을 남의 손에 맡긴 이후에는 불행히도 살고 싶어졌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야콥을 무척이나 안쓰럽게 보이게 했지만, 한편으론 사랑을 위해서 엘리시움과의 계약을 파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종잇장같구나'란 생각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건 별 다른 게 없다. 그냥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겁다가, 사소한 일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엄청나게 우울하다가도 한숨 자거나 단 걸 먹고 나면 풀리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갈대 같이 지조가 없어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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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종잇장이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라고 생각하면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한층 가벼워질 수 있다. 굳이 죽음을 무겁고 딱딱하게만  생각할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야콥은 죽음을 늘 생각했지만, 막상 죽음을 가까이 마주해야 할 때,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영화는 '로맨스'로 그리고 '코미디'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물론 야콥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두 야콥처럼 다시 인생을 살고 싶게 하는 특별한 연인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고 세상에는 거창하고 특별하지는 않아도 즐거운 것들이 있다. 혹시나 야콥처럼 죽음을 생각하지만 망설여지고, 하루하루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죽을 지 모르는 '서프라이즈' 상품에 가입했다고 생각해보길 추천한다. 야콥이 언제 죽음이 닥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듯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

덧붙이자면, 한동안 나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너무 심해져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겪은 적이 있었다.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고, 할 일도 많지만
매일 매일이 지겹고 열정이나 활력이 생기지 않는 무의미한 일상이 지속되던 시간이었다. 

방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서 푹 쉬고, 그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계산없이 마음껏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그 시기를 생각하면 야콥이 문득 이해가 된다. 
삶에는 역시 적당한 변화와 자극이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였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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