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니스트 백혜선 독주회

절제와 지적인 연주로 청중들을 만나다.
글 입력 2017.02.19 21: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호쾌한 타건, 완벽한 컨트롤
섬세하고 사색적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1.jpg
 

2월 10일 날 저녁이었다. 성남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주를 보기 위해 한 걸음, 보다 빠르게 티엘아이 아트센터로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던 나로서는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티켓 창구에 가서 티켓을 받자마자 정신없이 홀 안으로 들어갔다.아담한 사이즈의 티엘아이 아트센터.  그녀를 보기 위한 청중들은 작은 홀은 안되겠다 싶을 정도로 빈 좌석 없이 객석을 꽉 채웠다.
많은 청중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좌석이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그녀의 베토벤 월광소나타 연주가 시작되면서 그런 걱정은 일제히 사라졌다.


2.jpg
 
 
잔잔히 고요하게, 그 고요한 가운데서 일정한 음색, 균일한 터치로 시작된 3연음 월광소나타 오른손 진행 사이로 살며시 퍼지는 왼손 저음 부가 몇 마디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눈물샘을 자극했다. 아,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렇게 절제된 표현 안에서 그녀는 모든 감정을 담아냈다.
베토벤 월광소나타 1악장부터 3악장까지 한 호흡, 서로 다른 느낌의 악장이지만 절제됨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듯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특히, 월광소나타 3악장은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지만 넘치지 않은 절제된 파워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감탄스러웠을지도 모른다.


3.jpg
 
4.jpg
 
 
베토벤 월광소나타 전 악장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왜 이 연주자가 ‘악보 상의 가장 중요한 것에서부터 가장 최소한의 하찮은 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자신을 음악 앞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음악 속 드라마의 감춰진 모든 것을 드러낸다’라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때 리스트 페트라르카 소네트 No.123 ,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S.434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시를 읊어주고 시작된 페르라르카 소네트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내용과 상관없이 노부부가 편하게 젊은 날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랄까.
흐뭇하면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앞으로의 내 사랑과 지금의 사랑을 마주하게 하였다. 또한 먼 미래의 사랑까지 보여주는 느낌.. 혹시 그녀가 마법을 부린 게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2016년 대박 난 영화 ‘라라 랜드’의 몇몇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몽환적 감성에 젖게 해준 그녀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조금은 다른 느낌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는 리스트 음악이 언제나 ‘기교적이고 어려운 곡’이라는 인상의 뿌리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리스트의 곡이 얼마나 아름답고, 왜 사랑을 받으며, 어떻게 사랑을 노래했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아… 사랑은 잔잔하다가도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구나’


5.jpg
 
6.jpg
 
 
인터미션 동안 그녀의 베토벤과 리스트 연주에 묶여있었다. 그녀가 표현해내는 선율과 이야기로 나의 무의식까지 파고든 느낌이었다, 그렇게 15분간 멍 때리다가 의상을 갈아입고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니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2부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친구의 죽음을 창조력으로 승화시킨 걸작 ‘무소로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차분하고도 나지막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리스트 연주 전에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저음 톤에 차분한 말투가 지적인 그녀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연주력과 일치되는 느낌. 그러나 약간의 재치가 가미되어 그녀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전람회의 그림은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소로그스키의 친구이자 전람회의 그림의 주인공인 ‘하트맨’의 그림을 준비했다. 그림과 그녀의 표현이 하나가 됨으로써 각각의 주제별로 너무나 이해가 쉬웠다. 그녀가 소리를 ‘이미지화’ 시킨 것이다. 그래서일까? 심포니로 듣는 것보다 그녀의 연주가 훨씬 더 경이로웠고 한번 더 반하게 되었다.
다채로운 터치와 음색, 스펙트럼이 넓은 사운드, 연주하는 모습만 보아도 느낄 수 있는 그녀의 지적이고 사색적인 모습.
어떻게 청중들이 환호, 감탄, 큰 박수를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앙코르 곡 ‘리스트 사랑의 꿈’까지 모든 연주가 끝나고 집 가는 길 걱정돼 사인회에 참가는 못했지만 오며 가며 한 걸은 내디딘 내 발걸음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피아니스트 백혜선,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7.jpg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이라면, 그녀에게서 절제가 풀어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꼭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반드시 자신의 연주에서 깨닫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 클래식을 사랑하는 비전공자 청중이라면 그녀의 연주에 모든 걸 맡길 준비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녀는 믿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확실하다고 이번에 제대로 알았으니까.
집 가는 길 몸은 피곤했지만 그녀가 선물해 준 ‘사랑의 꿈’ 안에서 행복한 기분을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만큼 사랑하세요’ 
여기서 주어진 시간만큼이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아닐까. 그녀의 연주를 통해 오늘도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하는 그런 내가 되길 꿈꾼다.

글_공연예술 에디터_그녀윤양



image_9348681541485606559780.jpg

 

[그녀윤양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