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갈라파고스는 어디에 있나요? : 『해리엇』 [문학]

글 입력 2017.02.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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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공자들이 주를 이룬 독서모임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모인 모임은 적당히 유쾌했고 적당히 조용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잊을 수 없는 소설이 뭔가요?" 그 물음에 적당히 고민했다. 사실 문학을, 그것도 창작을 전공하는 입장에서는 수도 없이 들어온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나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소설이란 상황마다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지금 생각나는 건 박형서 작가의 『자정의 픽션』이네요."
 "그럼 가장 벅찼던 소설은요?"

 그 질문엔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질문을 한 상대에게 웃어주고 바로 답했다. "『해리엇』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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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2016.)



1.  아동문학 : 『해리엇』

 한윤섭 작가가 지은 소설 『해리엇』은 따지고 보면 아동문학이다. 즉 주 독자층은 성인이 아니라 아동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을 가장 벅찬 소설로 꼽은 이유는 대부분의 문학이 상실한 감성을 이 소설은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동화'라고 분류되는 이야기를 향한 편견이 있었다. 첫 번째로 유치할 것이고, 두 번째로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편견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몹시도 편협한 사람이었다. 동화가 비단 『콩쥐 팥쥐』나 『신데렐라』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에서 동화란 그런 류의 것들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는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내 사고가 얼마나 협소한 공간 속에 속박되어 있는지 말해주었다.

 『해리엇』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읽은 소설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후\ 홀린 것처럼 아동문학을 찾아 읽었다. 아동문학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시선을 맞춘 소설이 가장 소설다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동문학은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뻔한 주제였지만 전혀 식상하지 않았다. 어려운 말 없이도 진지했고 별 것 아닌 것들로 나를 울렸다. 그 즈음에 읽은 것이 『해리엇』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유사한 동물 캐릭터를 세웠음에도 이 두 소설은 서로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간단히 말해 『해리엇』을 읽으면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단 한번도 떠올린 적이 없다는 말이다. 보통 유사한 캐릭터를 활용한 소설이 있으면 후작을 읽으면서 전작이 떠오르지만 『해리엇』과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이 두 소설이 자신들의 개성을 얼마나 훌륭하게 풀어냈는지를 입증한다.

 『해리엇』은 찰리라는 원숭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숲에서 엄마와 함께 살던 원숭이 찰리는 사냥꾼에게 잡혀 엄마와 함께 공원으로 오게 된다. 찰리는 그곳에서 엄마와 떨어져 테드라는 어린 아이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 찰리는 그곳에서 인간들에게 길들여진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로 떠나게 되면서 아이의 부모는 찰리를 동물원으로 보낸다. 찰리는 원숭이 우리에 갇히게 되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원숭이를 다른 원숭이들이 곱게 받아들일 리 없으니. 찰리는 스미스라는 다른 원숭이의 공격을 받는데, 그때 해리엇이 나타난다. 백칠십오 년을 산 거북 해리엇은 동물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물이자 생명의 빛이 꺼지고 있는 노(老)거북이다. 해리엇은 밤새 찰리의 우리 앞을 지켜주며 찰리가 다른 원숭이들로부터 공격 당하지 않게 막아준다. 『해리엇』은 그렇게 찰리의 시선을 따라 갈라파고스를 그리워하는 해리엇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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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갈라파고스 거북, 해리엇

 해리엇이 살던 갈라파고스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바다가 부서지는 소리와 다정한 볕이 내리는 백사장에 있노라면 해리엇은 단잠에 빠지고는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탄 배가 갈라파고스를 향해 오면서 낙원은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에게 잡힌 거북과 새들은 배에 갇혀 항해를 시작한다. 배의 움직임이 며칠이나 지났을지 헤아리는 무렵, 사람들은 거북을 한 마리씩 바깥으로 데리고 간다. 다른 거북들은 사람들이 거북을 풀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내 옆의 친구가 사람들의 식량이 되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안 거북들은 어린 거북들을 뒤로 물러서게 한 후 스스로를 희생한다.


"우리는 죽을지 몰라도 우리의 땅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알려야 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가장 많이 들어 보이는 거북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알려요?"

 또 다른 거북이 답답한 듯 물었다. 그러고는 몸을 움직여 사람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몸으로 밀었다. 울타리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중략)

 "다음번 사람들이 우리 중 누군가를 잡으러 온다면 내가 저 문 앞에 있겠어.
 다른 거북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 있으면 돼."

 모두들 그 말에 어리둥절해했다.

 "난 여기 있는 거북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어. 그러니까 아쉬울 것도 없어.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나갈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저 어린 거북들이 살아남을지도 모르잖아. 저들이 바다를 만나면 다시 우리의 땅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수많은 거북이 모래 속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향할 때처럼 말이야. 모두 갈 수는 없어도 누군가는 바다를 만날 거야."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2016.

 
 희생으로 살아남은 해리엇은 그의 고향인 갈라파고스가 아닌 동물원에서 살아가게 된다. 백칠십오 년을 동물원에 갇혀 살면서 해리엇을 무엇을 생각했을까? 잡혀오는 어린 동물들을 보면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해리엇은 동물원에 갇힌 부모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다시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는 긴 시간을 모두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에게 새로운 탄생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한 생명의 탄생은 아주 작은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의 희망인 것이다.

 어린 동물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듬직한 벽이 되어주는 해리엇의 생명의 빛이 가늘어진다. 더 이상 일어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해리엇은 천천히 안식의 늪을 향해 갈 준비를 한다. 깊은 밤, 찰리가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을 불러모아 해리엇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찰리는 가벼운 숨을 내뱉는 해리엇을 보며 해리엇을 갈라파고스에 보내주자고 말한다. 동물들은 주저하지만 그 동안 자신들을 돌봐준 해리엇을 위해 힘을 합친다. 찰리가 가진 인간의 열쇠로 문을 열고 찰리와 해리엇, 올드와 스미스는 그렇게 동물원을 나서 바다로 향한다.


모두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바다 냄새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해리엇, 이 냄새가 그렇게 좋아요? 난 잘 모르겠는데."

 스미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해리엇도 스미스를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보고 웃어 줄 힘조차 없었다.

 (중략)

 마른 모래를 한참 지나자, 발바닥에 젖은 모래의 감촉이 느껴졌다.
해리엇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찰리와 올드, 스미스, 개코 원숭이들이 해리엇을 보고 있었다.

 "내가 정말 살아서 바다를 보게 되었어."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2016.


 해리엇은 그렇게 그의 고향인 갈라파고스를 향해 떠난다. 부서지는 물결 속으로 아름다웠던 갈라파고스가 보이고, 친구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해리엇이 떠나고 난 뒤, 동물들은 그가 갈라파고스로 떠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해리엇이 떠난 동물원의 새로운 날을 알리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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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의 갈라파고스는 어디에 있나요?
  
 "너무 외롭고 힘든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친구는 한숨을 습관처럼 뱉으며 말했다. 적당히 답할 말을 찾다가 그냥 손을 들어 친구의 손을 잡았다. 가로등이 점멸을 반복했다. 이윽고 친구의 등이 들썩였다. 한적한 공원에는 친구의 흐느낌과 가로등의 점멸이 가득했다. 
 
 "홍콩 갈까?"

 친구의 흐느낌이 옅어지고 가로등이 마침내 꺼졌다. 문득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다가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홍콩 가자. 친구는 의문스런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 홍콩 갔을 때, 정말 좋았거든. 가서 있는 동안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어."
 "돈이 없어."
 "나중에 돈 생기면 가자."

 대화는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친구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눈을 크게 떴다. 우리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의 갈라파고스로 친구를 초대한 첫 걸음이었다.

 해리엇에게 갈라파고스는 희망이었다. 나에게 갈라파고스는 휴식이었고 친구에게 갈라파고스는 아직 정착하지 못한 작은 배였다. 갈라파고스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누구든 자신의 갈라파고스로 타인을 초대할 수 있다. 또한 갈라파고스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어떤 이는 희망으로, 어떤 이는 안식처로 또 다른 어떤 이는 그곳을 자신만의 낙원이라고 명명할 것이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눈을 감고 홍콩에서 보냈던 짧은 나날을 떠올린다. 나의 갈라파고스는 그렇게 존재한다. 훗날 나의 갈라파고스는 홍콩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갈라파고스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밤, 모두에게 묻고싶다. "당신의 갈라파고스는 어디에 있나요?" 하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모두의 자유를 응원한다.





*모든 이미지는 소설 『해리엇』의 삽화를 사용했습니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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