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아무도 모른다' -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럼에도 살아간다. [문화전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글 입력 2017.02.12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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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2017년 2월 8일 재개봉 했다. 약 13년만에 재개봉된 이 영화는 2004년 개봉영화로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로 인해 세상에 좀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40분의 긴 러닝타임 속에서도 가족과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세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펼쳐낸 덕분에 보는내내 집중도를 흐리지 않았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실제 사건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참혹하다.





아이들의 엄마는 함께 살던 동거남이 다른 여자가 생겨 떠난 뒤, 그가 혼인신고와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장남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지만 법적으로 그녀는 미혼이었고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탓에, 엄마는 주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 뒤 그녀는 반복적으로 남자들을 사귀고 임신해서는 집에서 출산하고 출생신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5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차남은 병사했고,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매장 허가도 얻을 수 없었던 엄마는 죽은 아이를 비닐에 싸서 악취제거제와 함께 벽장 속에 넣어뒀다. 장남은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동생들을 돌보았고, 엄마는 장남에게 아이들을 돌보도록 한 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1988년 1월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고, 그녀는 남자와 동거하기 위해 아이들을 아파트에 버려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당시 장남은 14살, 여동생 셋은 7살, 3살, 2살이었다. 엄마는 장남에게 돈은 등기로 보낼 것이고 가끔 살피러 오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매월 7만~8만엔의 돈을 부쳤고 가끔 장남을 불러내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볼 뿐 집으로 오지 않았다. 장남은 나이에 비해 똑똑했지만 14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냉동식품이나 과자를 먹이고 셋째와 넷째의 기저귀도 돈이 떨어지자 잘 갈아주지 못하게 된다. 영양부족으로 보채는 동생들이 귀찮아진 장남은 동생들보다 친구들과 노는 데 더 열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장난삼아 셋째를 때리다가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마침내 셋째는 죽게 된다. 장남은 주변에 알리면 혼이 날까 두려워 어머니가 했던 대로 동생의 시체를 비닐에 넣어 악취제거제를 넣고 벽장에 보관했다. 그러나 보관 방법이 서툴렀던 탓에 악취가 심해지자 장남과 그의 친구는 시체를 여행 가방에 넣고 공원에 버린 뒤 나뭇잎으로 덮어놓는다. 7월이 되자 집주인은 아파트에 어른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복지사무소에 연락해 상담원이 방문한 뒤 아이 셋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둘째와 막내는 영양실조로 쇠약해져 보호시설로 가게 된다. 경찰이 가택수색을 한 결과, 엄마가 숨겨놓은 죽은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사건은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아이들의 엄마를 찾는 여론이 들끓고 보도를 보게 된 엄마는 경찰에 출두한다. 엄마는 아이들과 만나 비로소 셋째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고, 보호자 유기, 치상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장남은 셋째에 대한 상해치사, 사체 유기로 기소되었으나, 조사 결과 장남의 친구들이 사건에 더 크게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장남의 친구들이 구호원에 송치된다. 장남은 양호시설에 보내져 그곳에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둘째와 넷째도 보호센터에서 양호시설에 보내졌지만 차후 엄마에게 돌아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 No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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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실제사건 전체를 영화화 하지 않고, 단지 배경과 실화의 마지막 부분을 모티브로 하여 연출을 시도 하였는데 이는 세상이 발전하며 도래한 편리성시대의 사각지대를 꼬집어내듯 잡아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이로서 반듯해보이던 일본사회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다가오는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처리방식, 전개방식 또한 전혀 불편함 없이 표현했지만 그러면서도 사회를 향한 이야기 하는 메세지는 마음을 무겁고 힘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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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서는, 실제사건과 배경적인 면은 거의 비슷하다. 장남인 아키라 이외엔 아파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고 집에서만 네남매를 키운다.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엄마 대신 집안일을 다 하고 있다. 이유인 즉슨, 미혼인 상태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던 탓에, 제대로 된 아빠 한명이 없는 상태이니 아이들은 숨어있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계속적으로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엄마는 또 다른 남자를 찾게 되고 그와 동거하기 위해 아이들에겐 일정의 돈만 남기고 처음은 몇주, 그 다음은 달, 그러고는 이내 성까지 바꾼 후 잠적해버린다. 아이들은 점점 생활비가 바닥나게 되고 전기와 가스까지 끊긴 채 살아가게 되지만 장남인 아키라는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터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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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라 : “엄마는 정말 제멋대로야”
- 엄마 : “제멋대로라니, 제멋대로인 건 혼자 떠나버린 네 아빠야. 난 행복해지면 안 돼?”
- 아키라 : “···.”
-영화 '아무도 모른다' 中



이러한 연출방식이 나를 더욱더 힘들게 했던 것은 엄마가 부재하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절대 울지않고 묵묵히(또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저 엄마가 올 때를 기다리며. 그 어린 아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미워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러한 부분이 때로는 억지스럽기도 하고 극적이며 신파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영화들과 더욱 더 대조되어 비춰졌다. 그리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과 너무도 안맞는 경쾌한 음악들이 아이들의 비극을 더 극대화시켰다. 이 마저도 감독의 의도한 바 이겠지만, 가장 화가 났던 것은 그런 상황을 어른들은 마치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그 아이들을 지나친다는 것이다. 알고도 모른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알지 않은 것이다.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고 너무나 가슴아프게 만들었다. 1988년에 일어났으나 약 29~30년이 흐른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도 전혀 이질적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어른들에 비한 이 네명의 아이들은 오히려 더 어른 같이 대견했고,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크레딧이 끝나갈 때 까지도 나는 그 기나긴 여운을 떨쳐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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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또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바로, 여기 나오는 장남역할인 아키라(야기라 유야)가 만 14살의 나이로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것이 왜 주목할 점이냐 하면 여기 나온 아이들은 모두 아역배우가 아니었다. 아키라 또한 마찬가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들이 대본에 얽매이기보다는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영화 속 촬영 기간 또한 영화 속 시간과 동일 하게 1년이 좀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자연스레 바래진 옷들, 운동화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을 잘 보여줬던 자란 머리. 이는 또한 엄마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흐름이 되기도 하지만.

게다가 아이들의 취향과 성향을 고려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키라의 막내동생 역할인 유키가 실제로 좋아하는 것이 아폴로 초코 여서 시나리오에서 수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만든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정말이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참혹하고 비극적이 소재를 다루면서도 감독이 보여내는 엔딩은 사건과는 좀 다르게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 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메세지는 오늘도 우리에게 바래지 않는, 앞으로도 바래지 않을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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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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