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겁지 않은 '철학'책 [문화전반]

서양철학사의 '핵심'이라 가볍다. 『철학의 에스프레소』
글 입력 2017.02.08 23: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철학에도 나이가 있다. 철학의 탄생에 대해 그 누구도 분명하게 얘기해줄 순 없지만, 서양철학에 한해 이야기해보면, ‘탈레스’를 기준으로 얼추 2600살이 됐다. 그러니까 이제 모든 내용을 살펴 보기엔 그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는 뜻 일거다. 이는 사람들이 철학에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명의 철학자가 내놓은 사상을 소화해내기도 힘든데 2600년간의 내용을 소화시키기란 겁부터 나는 일이다. 게다가 그 내용들은 얼마나 또 낯선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존재’라느니, ‘실존’이라느니 ‘비은폐성’과 같은 무거운 용어들은 ‘왜 철학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충분한 명분이 된다.


2017-02-09 01;36;04.PNG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저자인 빌헬름 바이셰델은(1905-1975)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 교수였으며 칸트의 역사비평 판본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정직한 학문활동을 했던 학자"로서 개신교 신학,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다. 책의 원제는 ‘철학의 뒷계단’ (Die philosophische Hintertreppe, 1996) 인데, 저자는 이 뒷계단의 의미를 서문에 적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의 지향점과 매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뒷계단은 집으로 들어가는 통상적인 입구가 아니다. 앞계단처럼 밝고 깨끗하고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 않다. 대신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말쑥하게 차려입지 않아도 된다. 뒷계단을 통해 올라갈 경우 
화려한 허식과 고귀한 척하는 과장 없이 그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들의 인간됨, 또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위대하고도 약간 감동적인 노력도 보게 된다.(…) 뒷계단은 장식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홀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따금 더욱더 확실하게 목적지로 안내해준다.“
 

 '철학의 에스프레소'란 한국판 제목처럼 이 책은 2600여년에 달하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압축해놓았다. 한 생애동안 철학의 역사를 훑은 정직한 한 학자의 손에서 철학은 더 이상 딱딱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책 속에서 34명의 서양철학자들은 캠핑 마지막날 모닥불을 앞에 둔 사람들마냥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의 일상과 삶, 인간적인 모습들과 만나다 보면 어딘지 그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룰 때엔, 이 책이 우리와 철학자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들은 줄이고 쉬운 말들로 풀어 설명되어 있으며 "읽는 이를 한 철학자의 중심사상으로 곧장 데려"가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딱 맞는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지금 내 기분에 딱 맞는 소설, 지금 내 연애상황에 딱 도움이 될 심리학 책처럼 말이다. 나에게 이 책은 그런 행운이었다. 철학에 대한 막연한 관심만으로 철학과를 지원하곤, 막상 4년을 공부할 걸 생각하니 조금은 두려웠던 때였다.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앞두고 이 책은 '좋은 대학 첫 학기 되기를, 더 지혜롭게 되기를'이란 짧은 문장과 함께 선물처럼 왔다. 얕은 지식만으로 펼쳐 봤던 첫 페이지는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을 주었다. 그리고 예상처럼, 나에게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몇 안되는 철학 책이자 서양 철학사를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짧고 강하게" 맛보게 해준 책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목적에 딱 맞는 책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하나 얻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 알려야하지 않겠는가, 무거운 용어와 방대한 양에 철학을 멀리해야만 했던 누군가에게 말이다. "이 책이 '가벼운 철학책'인 이유는 오직 핵심만 담겨있기 때문"이라 말해주면서. 

 
[이서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